BACKUP/로그



2022. 12. 29


 


───────  ───────
음악실의 유령
KPC 九条天 PC 安浦杉萌生
Written by 서라
[ 그 날의 너와 내가 가장 바라던, 그러나 오직 너만이 선택할 수 있는 이야기. ]
당신은 단언할 수 있습니다.
무지하여 눈치 채지 못했을 뿐 실은 무언가 바뀌기 시작했던 그 날의 아침은 여느 때와 다를 것 하나 없던 오전이었음이라고.
그러니까… 밤새 하얀 성에가 낀 베란다 창문 너머로, 통상 '여름 냄새'로 취급되곤 하는 오존 냄새가 조금 짙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요.
이미지
─────── CHAPTER 00 ───────첫째날 아침
삐이이이익.
코드를 꽂아두었던 유리 티포트의 주둥이에서 수증기 빠지는 소리가 납니다.
오전 댓바람부터 틀어두었던 뉴스의 주제가 전환된 것은 그 때였습니다.
메바에는이른 아침을 해결하기 위해 식탁에 앉은 채 TV속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한 달 전부터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정체불명의 전염성 질병에 대한 속보를 따로 다루기 위해 금주중 신설 편성된 채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나운서의 표정은 짐짓 심각합니다.
편성된 채널의 인트로격인 멘트가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 본격적인 보도가 시작됩니다.
그러고보니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것 같은데….
문득 TV의 볼륨을 낮춰두었던 것이 떠오릅니다.
安浦杉萌生:(화면을 흘긋 눈으로 훑는다. 잘 안 들리는데… 무슨 내용이지?)
(소리를 키우자…. 리모컨을 어디다 뒀더라.)
 ✷ 행운 판정 ✷ 
安浦杉萌生:
기준치:40/20/8
굴림:29
판정결과:보통 성공
소파 팔걸이 아래 나동그라져 있는 리모콘을 발견합니다.
安浦杉萌生:(리모컨을 집어들어 TV 볼륨을 높인다.)
:TV의 볼륨을 높이면...
핸드아웃 보도자료A*를 획득합니다.
정형화된 톤의 아나운서 멘트가 마무리 되면 화면이 뒤바뀌며 블러처리된 대형 병원들의 외관이 연이어 흘러나옵니다.
이번 전염병에 감염되면 체중이 급격히 감소하고 피부가 트는 등 사람에 따라 각종 면역력 결핍 증상을 보이지만,
대표적인 증상은 서서히 저체온증에 시달리기 시작하다 깊은 잠에 빠져드는 것이라는 기자의 설명이 이어집니다.
 ✷ 지능 판정 ✷ 
安浦杉萌生:
지능
기준치:70/35/14
굴림:61
판정결과:보통 성공
전세계를 강타한 이번 유행성 전염병의 병명이 아직까지 공식 발표되지 않았음을 떠올립니다.
증상이라 부를 것도 각기 다 다른 것이어서, 그나마 공통적인 증세라고는 저체온증이라는 점 말고는 밝혀지지 않았다니까요.
환자들은 입원치료시 일시적인 호전세를 보인뒤 다시 열을 빼앗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참 기묘한 병이 아닐 수 없습니다.
安浦杉萌生:(자라오며 병치레를 겪은 일은 거의 없다시피 했으므로 저와는 연관이 덜한 일이라 여겼으나…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그보다 언니는 괜찮으려나. 문득 떠올렸다, 이내 애써 생각을 지운다.)
문득 시계를 바라보니, 곧 등교할 시간입니다. 빨리 준비하고 나가야겠어요,
安浦杉萌生:(뭐… 이젠 알 바 아니니까요. 간혹 쓸데없는 생각에 빠져드는 것은 제 오랜 습관이었다. …
그리 생각하며, 교복을 마저 갖춰입는다.)지금 나가면 아슬아슬하려나.
교복을 마저 갖춰 입고 현관 거울 앞에 서면...
가슴팍에 간신히 달려 있는 교복 명찰에 눈이 갑니다.
곧 떨어질 것처럼 덜렁거리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安浦杉萌生:……꿰매고 가면 지각하겠지.(표정이 미세하게 구겨진다. 애초에 제대로 바느질할 손재주도 없었을 뿐더러….)
어쩔 수 없죠.(급한 대로 반쯤 덜렁거리는 명찰을 떼어 주머니에 구겨넣고 현관문을 나선다.)
명찰을 대충 주머니에 집어 넣고 집을 나섭니다.
평소처럼 걸어서 등교를 하면...
늘 다니던 골목에서 차분하고 잔잔한 품의 피아노 협주곡이 들려옵니다.
 ✷ 정신력 판정 ✷ 
安浦杉萌生:
정신
기준치:60/30/12
굴림:61
판정결과:실패
구름이 조금 끼어있지만, 맑은 하늘에 가벼운 공기.
여유로운 아침을 만끽하며 잠시나마 붕 떠있던 기분이 노골적으로 가라앉습니다.
왜일까요?
피아노를 그만둔 뒤로 건반에 더 손을 댄 적은 없어도 곡을 듣는 것까지 거북했던 적은 없는데….
평소에 다니지 않던 다른 루트를 이용해서라도 노래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길로 등교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이성 판정 ✷ 
安浦杉萌生:
SAN Roll
기준치:60/30/12
굴림:31
판정결과:보통 성공
安浦杉萌生:(부아가 치미려는 것을 애써 내리누르며, 미묘하게 신경질적인 손길로 귀에 이어폰을 꽂는다. 진정하자, 야스라기 메바에…. 그러게 왜 아침부터 쓸데없는 생각을 해서는. )
이미 한 번 음악에 대한 의지를 저버린 탓인지 청각과 마음이 전 같지 않습니다.
방금 느꼈던 메스꺼움도 그만둬버린 음악에 대한 내면의 적개심일까요. 아니면 미련일까요.
넓지도 좁지도 않은 시멘트 길의 인도를 따라, 같은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삼삼오오 무리지어 등교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서늘하고 건조한 공기가 칼칼한 입맛을 돋굽니다.
겨울이니까요.
安浦杉萌生:(야스라기 메바에는 피아노를 손에서 놓았던 그날부터 곁을 맴돌던 알 수 없는 감정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인정하면 정말로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릴 것만 같아서.) ……춥네.(피부를 스치는 찬공기에 메마른 겨울이 찾아왔음을 새삼 실감한다. 이어 그는 생각의 퓨즈를 끊고, 교복 자락을 여미고서는 걸음을 서둘렀다. 생각이 많은 건 그의 좋지 않은 습관이라고, 다시 한번 그리 생각하며.)
메바에는 아슬아슬하게 학교에 도착합니다.
메바에는 3학년 A반의 학생으로, 교실 뒷문을 열고 들어서면 후끈한 히터 바람 사이로 조례 직전 출석이 막 진행되려던 참입니다.
c반 선생님: 빨리빨리 앉아라.
安浦杉萌生:………죄송합니다.(빠른 걸음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는다.)
C반 선생님의 불같은 호령에 자리에 앉으면... 문득 이상함을 눈치챕니다.
잠깐만, C반 선생님이요? 여긴 A반인데요?
그러고보니 자리 배치도 어제와 묘하게 다른 것 같은 기분이?
 ✷ 관찰 판정 ✷ 
安浦杉萌生:
관찰력
기준치:75/37/15
굴림:82
판정결과:실패
메바에는 한달전부터 시작된 유행성 질병으로 인해 텅텅 비어있던 열댓 개의 책걸상이 모르는 아이들의 머리통으로 빼곡히 들어차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반을 잘못 들어온걸까요?
다시금 교탁으로 눈을 돌리면 출석체크 진행이 한창입니다.
安浦杉萌生:(……그럴 리가 없는데. 그러나 출석 체크가 한창인지라, 차마 주변에 말을 걸지는 못하고 일단 가만히 듣고만 있는다.)
 ✷ 관찰 판정 ✷ 
安浦杉萌生:
관찰력
기준치:75/37/15
굴림:83
판정결과:실패
:다시... 굴려봅시다!
安浦杉萌生:
관찰력
기준치:75/37/15
굴림:38
판정결과:보통 성공
어쩐지 아까부터 얼굴 언저리가 따갑습니다.
이건 마치, 누군가 이 자리를 쭉 지켜보고 있는 듯한 느낌….
고개를 휙휙 돌려봐도 짚이는 구석이 없습니다.
다들 하품을 하고 있거나 꾸벅꾸벅 졸고 있거나…. 여느 때와 다름 없는 조례 풍경이네요.
安浦杉萌生:(영 찝찝한 기분이나 어쩔 방도가 없었으므로… 애써 신경을 끄고 조례에 집중한다.)
출석체크를 끝낸 c반 선생님이 교탁 위로 출석부를 탕탕, 두어번 두드린 뒤 말합니다.
c반 선생님: 아까도 말했지만 뒤늦게 등교해 듣지 못한 사람이 있을테니 다시 한 번 공지한다. 갑작스럽겠지만 오늘부터 결석생 수가 많은 반을 임의로 묶어 합반 수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A반 C반은 미술, 음악중에 음악 과목을 선택한 반이지? 비슷하게, 미술을 선택한 B반은 D반과 합반 수업을 진행한다는 소식이다.
A반 선생님이 유행성 질병으로 병가를 내게 되셔서, 오늘부터 내가 A반과 C반의 통합 임시 담임을 맡게 됐고. 참고로 우리 반은 지금부터 A-1반이다. 이상, 조례 끝. 다들 조용히 1교시 준비하도록.
성황리에 황당한 공지를 일단락한 임시 담임 선생님이 안내를 끝마친 직후 교실 앞문 너머로 사라집니다.
安浦杉萌生:……네?(생각이 정보를 따라가질 못했다. 복잡한 와중에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한 것 같다는 거. 하나 이내 빠르게 수긍하고 다음 수업을 준비한다. 그런 와중에도 습관적으로 누군가를 향한 걱정이 뒤따른다. …본인은 눈치채지 못한 듯하지만.)
바뀐 임시 시간표에 따르면 1교시는 수학이라고 하네요.
메바에는 수업 준비를 합니다.
.
.
.
[ PM 12:40 ]점심시간 종료 20분 전.
점심을 해결하고 교실로 돌아와 바뀐 시간표를 재차 확인하면, 5교시는 음악 수업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교실 칠판에 노란색 분필로 작성된 커다란 문구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
'5교시 음악이래~! 교과서 챙겨서 음악실로 이동할 것!'
하필이면 음악 수업이라니… 내키지 않습니다.
겨울의 이동 수업은 특히 더 귀찮은 구석이 있기도 하고.
安浦杉萌生:(오늘은 영 되는 일이 없다. 쌓인 불만에 손으로 연신 머리칼을 배배 꼬면서도 다른 손으로는 착실하게 교과서를 챙긴다.)
손에 든 음악책의 사용감이 영 낯익지 못합니다.
 ✷ 관찰 판정 ✷ 
安浦杉萌生:
관찰력
기준치:75/37/15
굴림:16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교과서를 뒤집어 살핀 메바에는 책 모서리에 적혀 있는 낯선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정갈한 글씨체로 '3학년 C반 쿠죠 텐'이라고 적혀 있네요.
아침부터 합반 수업을 위해 책걸상을 옮겼다더니 아무래도 그 소란스런 틈에 교과서가 뒤섞였나 봅니다.
쿠죠 텐?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에요.
安浦杉萌生:갖다줘야 하나. ……그런데, 쿠죠 텐이 누구지?(의아함에 교탁 앞으로 가 자리배치표가 있나 살펴본다)
아직 자리 배치표는 없는 것 같네요.
오늘부터 전체 합반 수업을 진행한다고 했으니, 이 교과서의 주인도 5교시의 음악실에 나타나지 않을까요?
安浦杉萌生:(그때 전해주면 되겠다 싶어, 우선 음악실로 향한다.)그런데 그럼 내 교과서는….
메바에의 음악책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네요.
교과서는 나중에 찾고, 늦기 전에 음악실에 올라가는 편이 좋겠습니다.
安浦杉萌生:(충격….)
(그러나 빌리기엔 시간이 부족했으므로… 일단 음악실로 올라간다. 부탁하면 보여주려나.)
메바에는 음악실로 향합니다.
3학년 A반은 3층, 음악실은 5층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수업 시작 종울림을 목전에 둔 시간인지라 복도는 한적하기만 합니다.
주욱 정갈하게 뻗은 복도 창 너머로 초록이 모두 지고 나뭇가지에서 그대로 얼어붙은 얼음 덩어리들이 가득합니다.
겨울이 불시에 목구멍에 들이닥친 듯한 기분. 그 막연함을 가르고 어디선가 나지막한 악기 소리가 들려옵니다.
 ✷ 듣기 판정 ✷ 
安浦杉萌生:
듣기
기준치:60/30/12
굴림:82
판정결과:실패
끊길듯 가냘픈 소리는 잠시 숨을 멈추었다가… 연주를 재개합니다.
연주는 마치 소동물의 숨소리처럼 미약하지만 이 복도에서 악기 소리가 들려올만한 공간이라면 역시 한군데 뿐이죠.
아울러 더 듣고 말고 판단할 것도 없이 피아노가 연주되어 흘러나오는 소리임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당신이라면 더더욱 그럴 거예요.
아침에 들었던 곡소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속이 메스껍거나 신경이 날카로워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과거에 당신이 꽤 좋아하던 곡이었기 때문일까요?
마치 태엽을 감듯 부드럽고 유연한 악상이 여운처럼 귓전을 맴돕니다.
흡사 굳어버린 고목나무처럼 못 박힌 듯 서서, 이어지는 곡조를 관청하다 보면…
꼭 본능처럼 되새겨지는 감상이랄 것이 남는 법입니다.
 ✷ 지능 판정 ✷ 
安浦杉萌生:
지능
기준치:70/35/14
굴림:42
판정결과:보통 성공
…순간 가슴이 뛰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곡의 완성도가 훌륭하기 때문일까요?
상대는 템포와 리듬감 할 것 없이 악상의 표현이나 곡의 이해도 또한 뛰어난 편입니다.
연주자는… 고등학생이 아니지 않을까요?
메바에 알기로 이 학교에 이만큼이나 피아노를 잘 치는 학생은 없었습니다.
어쩌면 먼저 도착한 음악 선생님일지도 몰라요.
安浦杉萌生:(잠깐 멈추었다, 바로 걸음을 뗀다. 궁금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나 굳이 서두르지는 않았다. 이제 저와는 하등 관계없는 일이었으니….)
천천히 음악실로 향한 메바에가 문을 연 순간...
점심을 해결하고 뒤늦게 몰려온 아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옵니다.
당연히도 피아노 연주는 끊긴지 오래입니다.
학생A: 근데 누가 피아노 연주하고 있던 거 아니었어?
학생B: 그러게? 아니면 그거 아냐? 이 학교 원래 음악실에 귀신 나온대.
학생A: 뭔 소리야… 너 귀신 같은 거 믿냐?
학생B: 너야말로 못 들었어? 요즘 애들 없는 시간에 간간이 5층 음악실에서 피아노 연주 소리 난다는 거… 왜, 나 작년에 클래식 동아리에 아는 선배 있었잖아. 그 선배가 그러는데 축제 기간에 밤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있었던 적이 있더래. 달밤에 피아노 소리가 나서 눈 딱 감고 음악실 문을 열어봤는데 아무도 없었다는 거야!
학생A: 아, 헛소리 그만하고 앉아. 벌건 대낮부터 웬 귀신 얘기.
학생B: 진짜라니까?
安浦杉萌生:(관심 없는 척 은근 귀를 기울인다. 온몸에 소름이 비쭉 돋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어…. 그리 자기합리화하며 수업 준비에 집중하려 했지만….)
때마침 수업 종이 울립니다.
마흔 명에 육박하는 아이들이 왁자지껄 음악실을 서성이다 각자 자리를 찾아 착석합니다.
메바에 또한 적당히 빈 자리에 몸을 앉히고 선생님을 기다리다보면…
톡톡. 누군가 어깨를 두드립니다.
安浦杉萌生:………………!!!!!!!!!!(직전에 들었던 이야기를 계속 신경쓰고 있었던 탓에 흠칫 놀랐으나, 이내 표정을 갈무리하고 시치미를 뚝 뗀다.)……무슨 일인가요?
九条天:(흠짓 놀라는 메바에를 보고 살짝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야스라기 메바에, 맞지?
安浦杉萌生:(다소 얼빠진 표정이 되었다.)……네, 그런데요. 제게 무슨 용건이라도?
九条天:이거, 네 교과서지? 내 서랍에 섞여 들어온 것 같아서. (가지고 있던 교과서를 건넨다.)
安浦杉萌生:(교과서를 받아들고 생각에 잠긴다.)아, 그럼 혹시 쿠죠 씨…? (잠시 살펴보는 듯하다….) 잘됐네요, 마침 찾고 있었거든요. 혼잡하던 차에 책이 뒤바뀐 모양이에요. 제 교과서도 없어져서 조금 걱정했는데 다행이군요, 쿠죠 씨가 가지고 계셔서.
(조심스레 펴 두었던 교과서를 접어 네게 건넨다.)뭐, 아무튼간에…. 자, 받으세요.
九条天:응, 맞아.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 교과서를 건네 받는다. 비어있는 메바에의 옆자리에 시선을 두곤...) 옆자리, 비어있으면 앉아도 될까?
安浦杉萌生:네, 뭐….(뜸을 들였다 가볍게 고개를 주억인다. 앉으려는 것을 빤히 바라보는 듯하더니 이내 시선을 거두고 다시금 교과서에 집중한다.)
九条天:(메바에가 승낙하자, 의자를 꺼내 옆자리에 앉는다.)
문득 메바에의 눈에 쿠죠의 가슴팍에 붙어 있는 플라스틱 명찰이 보입니다.
광택 없이 매끈한 명찰 위로 새겨진 이름은 '쿠죠 텐'.
 ✷ 지능 판정 ✷ 
安浦杉萌生:
지능
기준치:70/35/14
굴림:89
판정결과:실패
:다시 굴려봅시다
安浦杉萌生:
지능
기준치:70/35/14
굴림:62
판정결과:보통 성공
문득 헛헛한 당신의 셔츠 옷감을 떠올립니다.
그래요. 당신은 오늘 아침 곧 떨어질 것처럼 달랑거리던 명찰을 발견해 주머나에 넣은 이래인지라, 하루종일 명찰을 착용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상대는 분명 오늘 처음 만나는 C반의 학생.
당신의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요?
安浦杉萌生:(명찰이 달려있던 가슴 부근과 너를 번갈아 바라보다….)그건 그렇고… 제가 이름을 말씀드린 적이 있던가요?
九条天:(메바에를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입을 연다.) ... ...오래 전부터 너를 알고 있었어.
그 순간 음악실의 출입구가 열리며 음악 선생님이 들어섭니다.
쿠죠는 어느새 정자세로 몸을 돌리고 턱을 괸 채 칠판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의문만을 남긴채 대화는 결국 흐지부지 종결되고 맙니다.
[ PM 13:08 ] 5교시 음악시간
음악 선생님: 자, 오늘 78p 바로크 시대 작곡가 파트 진도 나갈 차례지? 내가 알기로 A반 C반 진도가 비슷했거든? 모두 책 펼치자.
유럽 문명사에서 지칭되는 바로크 시대란 보통 17세기를 가리킨다는 거, 저번 시간에 먼저 이야기 했었지? 17세기의 예술을 가리킨다고….
점심시간 종료 이후, 선생님이 음악실에 등판함과 동시에 수업이 시작됩니다.
점심 식사 직후인지라 어마어마한 식곤증이 밀려옵니다.
벌써부터 꾸벅꾸벅 조는 등 시동을 걸고 있는 아이들의 수도 만만치 않습니다.
安浦杉萌生:(졸지 않으려 눈꺼풀에 힘을 준다.)
이제나 저제나 78p를 펼치기 위해 교과서 페이지를 넘기던 메바에는…
어라? 60p쯤에서 전에 본 적 없던 작곡가의 이름을 발견합니다.
소제목은 'A에 대하여'.
원래 음악책에 이런 내용이 실려 있었던가요? A라는 작곡가가 존재했던가요?
과거에 나름 오래간 피아노를 전공했던 자신이 교과서에 실릴 만큼 이름난 작곡가를 모를리 없는데…
왠지 모를 위화감이 듭니다.
 ✷ 이성 판정 ✷ 
安浦杉萌生:
SAN Roll
기준치:60/30/12
굴림:25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손 놓고 지내는 동안 머리가 돌처럼 굳어버린 건가?
安浦杉萌生:(그럴 리가…. 교과서를 꼼꼼히 살핀다. 분명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인데.)
:핸드아웃 A에 대해여를 공개합니다.
전부 읽으면...
 ✷ 관찰 / 자료조사 판정 ✷ 
安浦杉萌生:
자료조사
기준치:70/35/14
굴림:10
판정결과:극단적 성공
박스 하단에 작은 글씨로 새겨진 메모를 추가로 발견합니다.
실제로 <어떤 계절이 흘린 눈물>의 원본을 보았다는 예술가의 증언에 따르면 악보 <어떤 계절이 흘린 눈물>에는 은은하게 빛나는 특이한 인장이 찍혀 있었다고 합니다.
형태가 무척 조악했으며 세월에 바래 누렇게 떠있었다고요.
달리 흥미로운 내용은 아닙니다. 아마 작곡가 A의 자필 사인이었을 겁니다.
 ✷ 지능 판정 ✷ 
安浦杉萌生:
지능
기준치:70/35/14
굴림:2
판정결과:극단적 성공
마침 몇년 전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던 A에 대한 기사를 접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음악에 문외한인 인물도 단숨에 사로잡을 수 있을 만큼 매혹적인 악보였다는 뜬소문이 내용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으니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죠.
그런데 그게 도둑을 맞았었나봅니다. 심지어 나머지 한 곡은 분실되었고요.
어쨌든 도둑 엔딩이라니 별 대단한 내용도 아닙니다.
악보 원본이 공개된 것도 아닌 모양인데 별 게 다 교과서에 실리는군요.
그 두 곡을 제외하곤 여지껏 악보랄게 발견되지도 않았던 무명 작곡가가 어떻게 교과서까지 신출귀몰 했는지 의문입니다.
安浦杉萌生:(나름의 자존심을 지켰다는 미묘한 안도감에 속으로 한숨을 내쉰 것도 잠시, 이내 황당함이 치밀어올라 눈을 가늘게 뜬다. 아무리 넣을 내용이 없어도 그렇지….)
음악실의 히터가 고장난 걸까요… 손끝이 조금 차갑습니다.
바깥에서는 칼바람이 불고 미처 스러지지 못한 낙엽들이 바닥을 수놓고 있겠죠.
올 겨울은 특히 더 추울지도 몰라요.
.
.
.
종례, 방과후
어떻게 하루가 지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은 염증이 날만큼 물러 터졌는데 시간은 너무나도 착실히 흐릅니다.
집에 갈 준비를 서두르며 종례를 맞이하고 있는데…
선생님: 야스라기, 잠깐 괜찮아?
安浦杉萌生:(즉답.)네. 무슨 일이신가요?
선생님: 임시 출석부가 음악실에 있는 것 같은데, 교무실로 가져다 줬으면 해서.
安浦杉萌生:아, 네. 알겠습니다.(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자리로 가져다 드리면 될까요?
선생님: 그래, 부탁한다. 여기 열쇠. (메바에에게 열쇠를 건넨다.)
安浦杉萌生:……네, 그럼.(빠른걸음으로 음악실로 향한다.)
마스터키를 들고 5층으로 발걸음하면 음악실의 방음 문이 좁은 틈을 벌리고 열려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런저런 가능성을 유추하고 있노라면 그 사이를 놓치지 않고 작달만한 피아노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 곡은… 익히 들어왔기에 잘 알 수밖에 없는 곡입니다.
드뷔시의 달빛.
누구인지 모를 연주자의 손끝에 의거하여 피아노 독주가 막 시작되는 찰나입니다.
 ✷ 지능 판정 ✷ 
安浦杉萌生:
지능
기준치:70/35/14
굴림:53
판정결과:보통 성공
수분을 모두 빼앗기고 부유하던 먼지와 공기가 미세한 파동이 되어 호수 밑바닥까지 가라앉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고보니 며칠 전부터였어요.
종례를 할 때면 계단은 한적했고 꽤 아득히 느껴지는 상층에서는 늘 정체 모를 누군가의 피아노 연주 소리가 들려오곤 했습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상대는 어쩌면 오늘 음악 시간 시작 전에 문 너머에 있었던 그 사람일지도 모르죠.
늘 환청같은 피아노 곡소리를 들으며 계단을 내려가던 기분이 좋았는지 싫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문은 여전히 열려있고 연주는 거리낌이 없습니다.
安浦杉萌生:(문득 아까 들은 귀신 이야기가 생각났던 탓에, 괜스레 신경이 곤두섰다. 일순 망설였으나 결국 미세하게 떨리는 손길로 문을 연다.)……실례합니다.
문을 가르고 접어든 공간의 꼭 닫혀있던 커튼이 말갛게 걷힌 가운데, 잠시 눈 앞이 하얗게 정전했습니다.
산발하는 태양 빛은 이따금 사람의 혼을 쏙 빼놓는 구석이 있습니다.
눈부신 빛에 적응한 시야 너머로 들어오는 것은 예의 그 거대한 그랜드 피아노.
탁한 햇빛을 눈부시게 반사해 고아한 빛을 뿜는 악기 너머 건반을 다루고 있는 사람은…
놀랍게도 오늘 음악 시간에 함께 수업을 듣던 C반의 쿠죠 텐입니다. 막연히 듣기에도 굉장히 탁월한 실력입니다
비쩍 마른 다갈색의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를 비집고 나온 빛이 등 뒤를 적시고 있습니다.
순간 넋이 나갈 뻔했습니다. 그런 순간이었습니다.
자신이 그만 두어버린 피아노를 정성껏 연주하는 쿠죠를 바라보는 메바에의 심정은 어떤가요?
安浦杉萌生:(그럼 나를 알고 있었다고 말한 건…. 야스라기 메바에는 말없이 시선을 내리깔았다. 급작스레 몰려온 부끄럼 탓이다. 누군가는 한평생ㅡ기실 정확한 것은 아니었으나, 텐의 연주를 들은 메바에는 막연하게나마 그렇게 확신했다.ㅡ을 바쳐왔던 것을 저는 고작 치기어린 자존심, 허황된 기대가 깨졌다는 이유 하나를 핑계로 그만두었으니…. 자기중심적으로 굴었단 것쯤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돌이킬 수는 없는 일이다. 언니 없이 홀로 무대에 설 수 있을 리가. 그도 그럴 게, 저는 절대 혼자 빛나지 못할 것이므로….)
九条天:(음악실 안으로 들어오는 누군가가의 인기척을 느꼈지만,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는 연주를 멈추지 않고 끝까지 들려주고 싶었기에. 손 끝으로 부드럽게 건반을 누른다. 아주 소중한 것을 다루듯이.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던 땀이 턱 끝 아래로 떨어지면, 연주는 끝이 난다. 건반에서 손가락을 떼고, 그 옆에 세워두었던 녹음기의 정지 버튼을 누른다. 고개를 돌려 문 앞에 서있을 그녀를 바라본다.) …야스라기 씨. 음악실에는 무슨 볼 일이야?
安浦杉萌生:(감정을 억누르고 쳐다보는 것을 마주 바라본다. 그러나 잠시간 침묵하다 결국 괜스레 시선을 피해버린다.)뭐, 별 건 아니고…. 출석부를 가져와 달라고 선생님께 부탁받아서요. 혹시 못 보셨나요?
九条天:출석부라면 교탁 위에 있던 걸 봤어. (녹음기를 주머니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安浦杉萌生:아, 감사합니다.(교탁 쪽으로 가 출석부를 집어든다. 그리고 곧장 문을 나서려다 멈칫하고 흘긋 네 쪽을 바라본다.)……이 학교에 이 정도의 피아노를 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없는데요.(잠깐 말을 멈추었다….)최근에 전학오신 건가요? 아니면….
九条天:맞아, 최근에 전학 왔어. 모르는 것도 당연해. (피아노에 두었던 시선을 메바에에게 옮기면 시선이 맞는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입을 뗀다.) ...야스라기 씨, 피아노 쳤었지?
安浦杉萌生:(순간 숨을 삼켰다. 당황한 탓에 품에서 출석부가 약간 흘러내렸으나, 금세 언제 그랬냐는 듯 뻔뻔스레 표정을 지우고 출석부를 고쳐 든다.)네…, 그렇죠. 그만둔 지 꽤 되었지만요.(이내 미묘한 낯이 되었다.)피아노에 관심이 많으신가 봐요. 그렇게 이름을 날렸던 것 같지는 않은데.
九条天:아직까지 콩쿨에는 나가본 적이 없거든. 이번 크리스마스 콩쿨에 처음으로 참가 해. (건반을 손가락으로 꾸욱 누르자, 음악실 안으로 소리가 짧게 퍼졌다.) 야스라기 씨가 피아노를 그만 뒀을 줄은 몰랐네. ...그만 둔 이유, 물어도 될까?
安浦杉萌生:초면에 그런 사적인 걸 물어보시는 건 실례라고 생각하는데요.(명백한 회피. 그런 것치고 여상한 낯이다.)뭐어…, 일단 부상으로 그만뒀다고 해 두죠.(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 제법 얄미운 낯으로 한참을 바라보더니 피아노 쪽으로 시선을 옮긴다.)그만둔 주제에 말을 얹는 것도 좀 뭣하지만…, 이정도로 잘 치는 사람은 드무니까요. 그래서 문득 궁금해져서.(뜸)별 의미는 없었어요. 미련이 남은 것도 아니고.(건반을 손가락으로 툭 건드려본다. 그러나 끝끝내 누르지는 않았다.)
아무튼, 더 방해하기도 죄송하니 이만 가 봐도 될까요?
九条天:실례였다면 미안해. 나도 궁금해져서 말이야. (건반을 건드리는 손가락을 빤히 바라본다.) 야스라기 씨만 괜찮다면 부탁 하나 하고 싶은데.
安浦杉萌生:……일단 들어보고요.(의아한 듯…)
九条天:내일 아침에 음악실로 와줄 수 있어? 야스라기 씨는 경험자니까 연주에 대한 정확한 의견을 들려주지 않을까 싶었는데... 괜찮을까?
安浦杉萌生:뭐, 듣기만 하는 거라면야 어려울 것도 없는데요….(저로 괜찮으신 건가요? 그만둔 지 오래돼서, 솔직히 별로 자신은 없거든요. 하고선 웅얼거리듯 덧붙인다.)
九条天:지금 이 학교에 야스라기 씨만큼 피아노를 자세히 아는 학생은 없잖아? 음악 선생님은 바쁘실 게 분명하니까.
安浦杉萌生:그건 그렇지만….(연신 눈을 굴린다. 틀린 것 하나 없는 말이었다.)알겠어요. 하지만 정말 장담은 못 하니까요.
九条天:고마워, 야스라기 씨. (악보를 챙겨 품에 안는다.) 그럼, 내일 오전 7시에 보자.
安浦杉萌生:네, 그럼….(빠른 걸음으로 음악실을 빠져나간다.)
음악실을 빠져나오며, 메바에는 떠올립니다.
스스로가 부끄럽게 여기던 과거를.
...정말, 더 이상 피아노에 아무런 미련도 없나요?
安浦杉萌生:이제 다 끝난 일이니까.(그러나 직전의 연주가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익숙한 악보, 익숙한 선율. 나였다면 어떻게 했을까….)……그래야 할 텐데.
安浦杉萌生:
??? Roll
기준치:100/50/20
굴림:50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다 쿠죠 씨 때문이에요.
언젠가 그만두었던 피아노, 이번에는 반대로 '언젠가 시작했던 피아노'에 대해 떠올립니다.
새로운 시도에 기뻤거나, 벅찼거나, 혹은 자신만만했을 지도 모를 과거입니다.
막연한 감상은 그곳에서 흩어집니다.
세상에 용기만큼이나 덧없는 기개가 또 있을까요.
여전히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은 내키지 않습니다.
아직까지는 역시나 무리입니다.
...슬슬 출석부를 두고 돌아갈까요? 너무 귀가하는게 늦으면 안 될테니까요.
安浦杉萌生:(쓸데없는 상념은 제쳐두고 반쯤 뛰어 교무실로 가 출석부를 내려놓는다.)
(그리곤 곧장 집으로 돌아간다.)
.
.
.
───────  ───────
메바에는 오전 7시에 음악실에서 만나자는 약속에 따라 제법 이른 시간 등교하게 됩니다.
회색의 먹구름을 거름종이 삼아 걸러 들어온 햇빛이 어슴푸레한 오전, 공기는 어제보다 더욱 싸늘합니다.
다른때 같았으면 충분히 밝을 시간인데도 해가 짧아 상당히 어둡습니다.
오늘은 내가 가장 빨리 등교한 건가? 그런 생각과 함께 책가방을 내려놓고 교실을 둘러보면…
텅 빈 서른 대여섯 개의 책상중 유일하게 책가방이 올라와 있는 책상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安浦杉萌生:(쿠죠 텐…? 미묘한 낯이 되었다. 이어 느릿하게 책상을 훑어본다.)
책가방이 올라와 있으며 나무로 만들어진 책걸상 모서리에 임시 시간표가 부착되어 있습니다.
왼쪽 상단에는 반과 번호를 묶어놓은 학번과 자리 주인의 이름이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군요.
쿠죠 텐의 책상입니다.
安浦杉萌生:(조심스레 살핀다. 하면 안될 짓을 하는 것 같지만…. 뭐. 나쁜 짓을 하려는 것도 아니고, 설마 누가 보겠나 싶어서.)
책가방을 내려 놓은 직후 이곳에서 무언가를 꺼내 갔는지 가방 지퍼가 살짝 열려 있습니다.
네다섯권 정도의 얇은 악보집들과 필기 노트, 교과서 몇 권, 필통따위의 학용품들.
켜켜이 쌓여 있는 악보집들 사이로 표지가 누렇게 떠있는 악보집 하나를 발견합니다
다른 악보집들은 거진 새로 구매한듯 기스 하나 없는 클리어화일에 분철되어있는 반면 저 혼자서 세월의 흐름을 증언하듯 표지 색이 바래있습니다.
安浦杉萌生:(더욱 가까이 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낡은 악보를 살핀다)
安浦杉萌生:
감정
기준치:25/12/5
굴림:8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누런 악보는 적어도 300년은 더 되어 보이는 것 같습니다.
安浦杉萌生:(잠깐…정말 잠깐만이니까요…! 눈을 꾹 감고 악보를 펼쳐본다.)
악보를 아예 펼친다면 음표가 수놓인 모양을 미루어 생초면의 작품입니다.
쿠죠는 작곡도 겸하고 있는 걸까요?
아울러 1p 상단에 뉴스 헤드라인처럼 자필로 작성되어 있는 곡명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 외국어 판정 ✷ 
영어 판정... 없으면 교육으로 판정해봅시다!
安浦杉萌生:
교육
기준치:55/27/11
굴림:61
판정결과:실패
:거짓말...
삼세판 해봅시다
함 더 ㄱㄱ
安浦杉萌生:
교육
기준치:55/27/11
굴림:77
판정결과:실패
:그러면 행운 판정으로... 해볼까요?!
安浦杉萌生:
기준치:40/20/8
굴림:49
판정결과:실패
:무슨 일이지?...
마지막으로 지능..
安浦杉萌生:
지능
기준치:70/35/14
굴림:97
판정결과:실패
인현:저 죄송한데 이거 상황극인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능 판정... 한 번만 더 해봅시다!
安浦杉萌生:
지능
기준치:70/35/14
굴림:6
판정결과:극단적 성공
곡명은 <겨울의 유령>입니다.
인현:
지능
기준치:70/35/14
굴림:19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첫 마디만을 살펴도 꽤나 매혹적인 곡입니다.
불현듯 어제 5교시에 음악 교과서에서 발견했던 'A에 대하여' 대목이 떠오른 것은 우연이었어요.
A는 16세기의 이탈리아 출신 작곡가로 <어떤 계절이 흘린 눈물>과 곡명이 알려지지 않은 의문의 계절 환상곡을 작곡했다고 알려져 있다… 고 했던가?
도둑 맞아 곡명은 미궁 속에 숨어 있다던 계절 환상곡이 마음에 걸립니다.
만약 <겨울의 유령>이 정말 300년 이상 된 곡이라면 <어떤 계절이 흘린 눈물>과의 작곡 시기가 얼추 맞물린다는 사실을 눈치챕니다.
 ✷ 이성 판정 ✷ 
安浦杉萌生:
SAN Roll
기준치:60/30/12
굴림:56
판정결과:보통 성공
 ✷ 정신력 판정 ✷ 
安浦杉萌生:
정신
기준치:60/30/12
굴림:78
판정결과:실패
…그런데, 어라?
이 장면 언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뜬금없이 데자뷰? 물론 데자뷰란 본디 뜬금없는 현상이긴 합니다만…
安浦杉萌生:……? 이 장면, 어디선가….(순간적으로 머릴 짚는다.)
그때, 교실 천장에 달린 스피커에서 7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립니다.
시계를 확인하면 시침과 분침은 7을 가리키고 있고 초침은 막 숫자 5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약속 시간인 오전 7시입니다.
찜찜하다기보단 의뭉스러운 상태가 이어집니다.
약속을 어길 것이 아니라면 더 늦기 전에 음악실로 올라가는 편이 낫겠습니다.
安浦杉萌生:(착각이겠거니… 싶어 애써 신경을 끄고 악보를 되돌려놓은 뒤 음악실로 향한다.)
음악실로 향하면...
마치 그 누구도 손대지 않은 것처럼 음악실 문은 굳게 닫혀 있습니다.
귀를 기울여보지만 오늘은 이 너머에서 달리 피아노 소리가 들려오지는 않는군요.
문고리를 잡아 돌리면 부드럽게 돌아갑니다.
열려 있으므로 어렵지 않게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겠네요.
安浦杉萌生:(가볍게 노크하고 안으로 걸어들어간다.)실례합니다.
음악실로 들어서면 낮은 온기를 머금은 특유의 겨울의 햇살이 메바에의 전신을 덮칩니다.
이름난 과거 음악가들의 초상화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방음벽 어귀에 붙어 있고, 교탁 너머의 칠판에는 분필 가루가 얕게 묻어나긴 했으나 그 나름대로 깨끗하고 정갈하기만 합니다.
오래된 악기만이 머금은 특유의 냄새는 익숙한 종류여서, 늘 이 냄새를 기억하고 있던 심장만이 조용히 두방망이질 칩니다.
그 단정하고 고요한 음악실 가운데 그랜드피아노 앞에는 약속처럼 쿠죠가 앉아 있습니다.
쿠죠는 뚜껑이 닫힌 피아노에 팔꿈치를 기댄 채 이마나 눈가를 짚고 있습니다.
메바에가 들어온 인기척을 눈치채지 못한 상태로, 어딘가 몸이 좋지 않은듯 안색이 창백합니다.
安浦杉萌生:(들이치는 햇살에 약간 미간을 찌푸렸다, 이내 시선을 흘긋 네게로 옮겼다.)……상태가 안 좋으신 거라면 약속은 내일로 미뤄도 상관없는데요.
九条天:... ...아. (살짝 반응이 늦었다. 눈가를 짚고 있던 손을 떼고, 메바에를 바라본다.) 이 정도는 괜찮아.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에 올려져 있는 악보를 챙긴다.) 그러고 보니... 야스라기 씨는 좋아하는 곡 있어? 옛날에 자주 쳤던 곡이라던가.
安浦杉萌生: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는데요.(눈을 가늘게 뜨고 네 안색을 꼼꼼히 살핀다.)건강 상태를 객관적으로 살피는 것도 피아노를 치는 사람이라면 응당 해야 할 자기관리의 일환이에요. ……(슬슬 잔소리에 시동을 걸려나 싶더니, 그냥 입을 꾹 다물어버린다.)
글쎄요. 즐겁게 쳤던 곡이라면 있어요. 드 뷔시의 작은 모음곡이라는 곡인데….(슬금 시선을 피한다.)……그렇게 열성적으로 좋아했던 건 아니지만요.
九条天:맞는 말이야. 콩쿨을 대비해서라도 지금 쉬어두는 게 맞겠지. (묘한 표정을 지었다가, 금새 갈무리한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고...) 야스라기 씨, 한 곡이라도 좋으니까 들어줘.
安浦杉萌生:(무어라 말하려는 듯 연신 입을 달싹댔으나 결국 그만두고 작게 한숨을 쉬어버린다. )딱 한 곡만이에요. 그 다음엔 양호실로 가는 걸로.(어조는 날카롭지만서도 표정엔 걱정이 가득하다. 말을 마치고선 가방을 내려놓고 근처 의자에 가 걸터앉는다. )
九条天:그래, 약속할게. (피아노 의자에 앉아, 악보를 뒤적인다. 악보 하나를 골라 녹음기와 함께 피아노 위에 올려둔다. 작은 숨을 내뱉고는 피아노 건반 위로 부드럽게 손을 올린다.)
安浦杉萌生:(녹음기에 잠깐 시선을 뒀다, 자세를 고쳐앉고 조용히 경청한다.)
아까 좋아한다고 말했던 작은 모음곡을 쿠죠는 연주합니다.
옛날에 자주 쳤던 곡을 연주하는 쿠죠를 보며 메바에는 어떤 생각이 드나요?
安浦杉萌生:(표정은 여상하다. 그러나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찔댔다. 괜스레 심기가 꼬인다. 반드시 실패할 것임을 알고 있는데도 가벼이 누르던 건반의 무게감을, 조명의 열기를, 무대 너머의 풍경을 몸이 기억하고 있어서… 그는 결국 주제넘은 생각을 해버리게 되고 마는 것이다.)
安浦杉萌生:
??? Roll
기준치:100/50/20
굴림:52
판정결과:보통 성공
메바에는 떠올립니다.
한참 좋아하던 곡을 완벽하게 연주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던 지난 날을 상기해냅니다.
연주를 끝마쳤던 순간에 꽤 기뻐했던 것도 같은데… 잘 생각나지는 않네요.
다만 당신에게도 분명 무던히 노력하던 나날이 있었습니다.
여전히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은 내키지 않지만요.
곧 연주가 끝이 납니다.
쿠죠의 손이 건반에서 떨어져 나옵니다.
九条天:(녹음기의 종료 버튼을 눌러 챙긴다. 의자에서 일어나 메바에가 있는 쪽으로 향하려던 순간, 몸을 살짝 휘청인다. 넘어지지 않으려 간이 책상을 붙잡자 덜컹! 하는 일말의 소음과 함께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악보집들이 바닥에 쏟아진다.)
(바로 몸을 숙여 악보를 천천히 줍기 시작한다.)
安浦杉萌生:잠깐…, 무리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요.(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악보를 같이 줍는다. 영 탐탁찮은 표정. 그러나 더 말을 얹진 않았던 탓에, 짧은 시간 정적이 흐른다.)실력이 좋으시더군요. 굳이 제게 조언을 구할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무심한 어조. 시선은 여전히 떨어진 악보로 향한 채였다.)
……그래서, 다시 물어보고 싶은데요. 왜 저인가요? 주변에 조언을 구할 만한 상대가 적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九条天:... ...야스라기 씨가 피아노를 그만둔 이유를 납득하지 못했으니까. 부상이라고 했었지. 그거, 정말이야?
安浦杉萌生:거짓말은 안 했어요. 어제 처음 본 사람이 참견할 영역도 아니라고 생각하고요.(얼어붙은 듯 잠시간 동작을 멈췄다. 여전히 시선은 바닥에 고정된 채였다.)납득하지 못하겠는 건 제 쪽이에요. 계속 이러시는 이유를 모르겠거든요.(그리고 문득 숨을 삼켰다. 목구멍에선 미약한 통증이 느껴진다. 날이 건조했던 탓이었을까, 이래서 겨울은 싫다고 생각하며…)
……제가 다시 피아노를 잡길 바라서?
九条天:그러네. 야스라기 씨 말이 맞아. 초면인 사람이 참견할 영역은 아니지. 알고 있어. (잠시 말을 멈추고 묵묵히 악보를 주웠다.)
... ...알면서도 감히 참견해보자면, 나는 야스라기 씨가 다시 피아노를 연주했으면 좋겠어. 말을 건 것도 그런 이유야.
安浦杉萌生:(느리게 고개를 들고선 무심히 네 쪽을 응시한다. 그러나 굳이 시선을 맞추지는 않았다.)……나가봤자 팔리지 않을 거예요. 가능성 없는 일에 투자할 만큼 무모하지는 않은지라.
九条天:(악보를 줍던 손을 멈추고, 메바에를 또렷하게 바라본다.) 높은 평가를 받는 연주만이 좋은 연주가 되는 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해. 야스라기 씨의 연주를 듣고 가슴이 울렁였던 사람은 분명 있었을 거야. 야스라기 씨. 무대에 올랐을 때 관객들이 지었던 표정, 제대로 기억하고 있어?
安浦杉萌生:(입술을 꾹 깨물었다.)……글쎄요.(애정을 원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건반을 두드리게 된 것은 맞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관객들의 감명받은 표정 또한 나름의 동기가 되었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물론, 관객들의 표정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만두는 순간 애써 지워버렸지만. 부러 꽁꽁 숨겨두었던 것을 강제로 끄집어내는 듯한 기분에, 넣은 것도 없는 속이 급작스레 울렁인다. 그건 불쾌감 탓이었을까, 아니면….)
그럼, 쿠죠 씨는 그걸로 괜찮은 건가요?(뜸)……텅 빈 연주회장에서도 동요하지 않고 연주할 수 있냐는 이야기예요.아무런 보답도, 갈채도 받을 수 없다고 해도.
九条天:응, 연주할 거야. 나는 피아니스트니까. 도중에 연주를 그만둬 버린다면, 그건 연주자 실격이잖아? 높은 평가 보다, 많은 사람들이 미소 지을 수 있는 순간을 원해. 그 순간을 위해 지금까지 노력해왔어. 야스라기 씨도 그 순간을 잊지 못했다면... 분명 스스로가 내린 대답에 제대로 납득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安浦杉萌生:(말을 듣고 있노라면 자꾸 구차해지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하여 메바에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반박할 건덕지도 없었을 뿐더러… 더는 그 시절의 자신을 부정하고 싶지가 않아서. 왠지 모르게 그런 기분이 들었다.)그쪽 진짜 최악이에요, 알아요?(무릎에 얼굴을 묻고선, 반쯤 뭉개진 소리로 웅얼댄다.)……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九条天:응, 미안해. 그래도, 그만둔다면 납득할 수 있는 방식이었으면 했으니까. ...그런데, 야스라기 씨. 우는 건 아니지?
安浦杉萌生:안 울었거든요?! 누가 울었다고 그래요.(즉답. 고갤 치켜들고 날카롭게 쏘아붙인다.)
九条天:정말이야? 안 울었다면 다행이고. (남은 악보 주워서 척척 정리하고 피아노 의자 아래 수납 공간에 넣는다.)
 ✷ 관찰 판정 ✷ 
安浦杉萌生:
관찰력
기준치:75/37/15
굴림:14
판정결과:극단적 성공
다른 악보집 사이로 낡은 악보집 한 권이 보입니다.
곡명을 읽지는 못했지만… 메바에는 악보집의 어귀에 자리하고 있던 어떤 인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주 찰나였지만 은은하게 빛나던 모양새가 아주 특이한 문양이었습니다.
일견 누군가의 자필 사인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네요.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九条天:(피아노 의자 뚜껑을 닫고는 다소 뜬금 없는 소리를 꺼낸다.) 음악실에 돌던 소문, 야스라기 씨는 알고 있어?
安浦杉萌生:(악보에 잠시 시선을 두었다, 이내 눈을 떼고 네 말을 경청한다.)음악실의 귀신 이야기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 이야기라면 들어본 적 있는데…갑자기 그건 왜요?(허무맹랑한 괴담을 믿을 성격으로 보이진 않는데.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가….)
九条天:그거, 단순한 소문 같지는 않더라. 그러니까, 밤중에 음악실에 오는 위험한 행동은 하지 마. (음악실의 문을 열고, 메바에를 돌아본다.) 이제 돌아가자.
安浦杉萌生:………가,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귀신 같은 게 있을 리 없잖아요? 쿠죠 씨도 참… 보기보다 순진하시네요.(고저 없는 어조로 멀쩡한 척 말을 이었으나…, 역시 평소보다 확연히 말이 많다. 답잖게 겁이라도 먹은 건지.) 뭐…아무튼, 가죠.(시계를 살피고선 빠른 걸음으로 음악실을 빠져나간다.)기다려요, 제가 먼저 나갈게요.
 ✷ 정신력 판정 ✷ 
安浦杉萌生:
정신
기준치:60/30/12
굴림:49
판정결과:보통 성공
그래요, 농담일게 뻔합니다.
메바에는 빠르게 음악실을 빠져나갑니다.
九条天:(음악실의 문을 단속한다.) 그럼, 약속대로 나는 양호실로 가볼게.
安浦杉萌生:(집요한 눈길로 상태를 살핀다.)데려다 드리지 않아도 괜찮나요?
九条天:그 정도로 심각한 건 아니니까 괜찮아. 걱정해줘서 고마워, 야스라기 씨.
安浦杉萌生:걱정한 거 아니거든요?(제법 뚱한 낯이 되었다.)뭐, 아무튼…, 그럼 이따 교실에서 봐요.(가볍게 손을 흔들고선 약간 흘러내린 가방을 챙겨 교실로 향한다.)
메바에는 교실로 향합니다.
.
.
.
점심 시간이 종료되고 또 다시 식곤증이 학생들의 수면욕을 지배하는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오후 1시 20분이 지나가고 있는 지금은 5교시. 물리 시간입니다.
해는 간신히 중천에 떠있고 불어오는 바람의 색은 투명합니다.
뾰족한 공기가 뺨을 건드릴 때마다 어떻게 된 게 졸음만 쏟아집니다.
安浦杉萌生:(졸지 않기 위해 눈에 힘을 준다….)
선생님: 거시 세계를 다루는 이론을 뭐라고 한다? 시간의 상대성 이론이라고 한다. 특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관찰자나 광원의 속도에 관계 없이 진행중인 빛의 속도는 일정하다고 설명 해줬었지? 따라서 시간과 공간은 속도에 따라 상대적이라고. 어허, 왜 다들 처음 듣는다는 표정을 하고 있어?
적어도 강한 중력이 시공간을 휘게 한다는 이야기는 기억하고 있겠지? 내가 그렇게 강조했는데. 블랙홀은 시공간에 구멍을 뚫는다고 별표까지 달아줬을 거야. 교과서 확인해 봐.
다들 졸고 있는 것 같으니 잠깐 재미있는 이야기 좀 해볼까? 다들 어렸을 적에 시간 여행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 있지? 실제로 과거로의 시간여행의 경우 광속에 가까워질 수록 시간이 느려지니까, 빛보다 빨리 나아가면 시간이 거꾸로 흐를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해.
하지만 빛보다 빠른 물질이 이 세상에 존재할 리가 없지? 2011년에 유럽 입자물리 연구소 CERN에서 초광속입자 해프닝이 있기도 했는데, 궁금한 녀석은 학교 끝나고 찾아보도록 해라.
공부를 제대로 한 녀석들은 눈치를 챘겠지만, 시간과 공간이 속도에 따라 상대적이라는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빛보다 빠르게 나아갈 경우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게 아니라 허수의 방향으로 흘러가버린다. 즉, 과거로 가는 시간 여행을 위해선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소리지. 우주 끈이나 웜홀을 사용한다거나. 하지만 웜홀이 그저 가상의 이론 상태일 뿐인 지금, 시간여행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겠지? 어딘가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미지의 구멍이 생겨나지 않는 이상 말이야.
安浦杉萌生:(그리 영양가 있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지만…, 일단은 경청한다.)
선생님은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지는 것을 끝으로 샛길로 빠졌던 수업을 재개합니다.
선생님: 다음 시간까지 시간여행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서술해 제출하도록. 숙제다!
뒤늦게 파격적인 숙제의 내용을 공개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꾸벅꾸벅 졸던 아이들이 잠에서 깨어나 한껏 야유합니다.
安浦杉萌生:(노트에 가볍게 메모해둔다.)
그때, 메바에의 눈에 무언가 열심히 적고 있는 쿠죠가 눈에 들어옵니다.
몸은 조금 괜찮아진 걸까요?
安浦杉萌生:(최근 전염병이 유행한다기에 조금 걱정했는데, 큰일은 아닌 것 같아 다행이네요.)
얼마 있지 않아 활짝 펼쳐진 교과서 위에 뜯어진 메모지 조각이 올라옵니다.
安浦杉萌生:(슬쩍 뒤집어본다.)
[오늘 방과후에 시간 괜찮아? 들를 곳이 있는데 같이 가줄래? -쿠죠 텐-]
安浦杉萌生:(인상 팍)수업 중에 사적인 쪽지 보내지 마세요.(정갈한 글씨로 힘주어 또박또박 적는다.)
안 가겠단 건 아니고.(이어 적힌 조그만 글씨.)
九条天:(쪽지 내용 힐끔 보곤 무언갈 적더니 메바에의 책상에 올려둔다.) 지금 아니면 말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방과후에 보자. 아, 답장은 안 해도 돼.
安浦杉萌生:그러니까 수업 중에…!(조그맣게 속삭이는 투로 한껏 성을 내려다, 선생님의 눈치를 보고 슬쩍 고개를 돌린다.)
선생님: 다들, 졸지 말고 수업에 집중해!
九条天:(언제 쪽지를 보냈냐는 듯 똑바로 앉아 수업을 듣는다.)
安浦杉萌生:(억울…)(옆자릴 한 번 흘겨보고선 다시 수업에 집중한다.)
수업에 다시 집중하면... 시간은 빠르게 흐릅니다.
.
.
.
두 사람은 필연적으로 함께 하교길에 접어듭니다.
해 지는 속도가 빠른 겨울인지라 오후 다섯 시가 넘어가는 이릇임에도 어둑어둑 땅거미가 집니다.
눈발의 잔해가 얼어붙은 아스팔트 위로 복숭아뼈를 붙잡는 냉기가 연기처럼 자리합니다.
九条天:야스라기 씨, 통금 시간 있어?
安浦杉萌生:아뇨, 하지만 너무 늦게까지 머물진 못하겠네요.(흘끔 바라본다.)아까 받았던 숙제, 웬만하면 오늘 안으로 끝내두고 싶거든요.
쿠죠 씨는요?
九条天:나도 비슷해. 동생이 있거든.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본다.) ...9시 전에는 헤어지는 걸로 할까?
安浦杉萌生:뭐… 좋아요.(뜸)그래서, 어딜 갈 셈인가요? 목적지를 아직 못 들은 것 같은데.
九条天:서점에 갈 생각이야. 새로운 악보를 고르고 싶었거든. 겸사겸사 선생님이 내준 숙제에 참고할만한 책도 찾아보려고 했는데... 야스라기 씨도 필요하지 않아?
安浦杉萌生:네… 아, 그렇죠. 마침 잘됐네요, 인터넷이라도 찾아봐야 하나 고민하던 참이었는데.
九条天:어서 가자. 요즘은 해도 빨리 지니까 어두워지기 전에 나오는 편이 좋잖아? (걸음을 조금 빨리 한다.)
安浦杉萌生:(잰걸음으로 뒤따른다.)
사거리에 접어들자 때마침 초록불이 점등합니다.
간만에 나온 거리의 풍경이지만 무언가 드라마틱하게 달라진 부분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이곳저곳 장식된 꼬마전구들과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만이 또 한 번의 겨울이 찾아왔음을 알릴 뿐.
그 사이를 지나 빠르게 서점으로 향합니다.
자동문 너머로 들어서니 새 책들이 모이고 고여 있는 장소 특유의 결좋은 나무 냄새와 약간의 곰팡내가 섞인 열풍 냄새가 느껴집니다.
추위에 흠뻑 젖어 있던 몸이 조금은 되살아 나는 기분이네요.
쿠죠는 찬 기운에 잔뜩 지친 기색을 하고서 서점에 들어서더니 악보집 코너를 둘러봅니다.
安浦杉萌生:(흘긋 보고 잠깐 미소를 띄웠다, 곧바로 표정을 갈무리한다.)시간여행, 시간여행이면….(과학 코너로 향한다.)
과학 코너에는 다른 코너에 비해 상주하고 있는 사람의 수가 적습니다.
쭉 둘러보면... 부자연스럽게 삐죽 튀어나온 책 한 권을 발견합니다.
安浦杉萌生:(집어든다.)
살펴보면 제목은 <전염의 역사>…
질병학 코너에나 있을 법한 책입니다.
읽어볼 수 있습니다!
安浦杉萌生:(펼쳐본다.)
:음악 코너/문제집 코너에도 갈 수 있어요!
安浦杉萌生:(문제집 코너로 가본다.)
문제집 코너로 향하면... 시험을 대비하기 위해 새 문제집을 보러 온 학생들이 각 책장마다 두셋 즐비합니다.
과목별 구역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문제집 코너를 살피던 당신은 빽빽이 꽂혀있는 문제집들 사이로 삐죽 튀어나온 책 한 권을 발견합니다.
게으른 누군가 구매를 재고하며 아무렇게나 꽂아놓은 책일지도 모르죠.
빼내어 살필 수 있습니다.
安浦杉萌生:(살펴본다.)
제목은 <음악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입니다.
음악 코너에나 있을 법한 책이 뜬금없이 문제집 코너에?
安浦杉萌生:(왜…)(음악 코너 너머의 다른 코너로 향하려 그 부근을 지나간다.)
음악코너를 지나쳐가던 당신은 다른 악보집이나 책들과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사이즈의 책 한 권을 발견합니다.
누군가 잘못 꽂아두었는지 삐죽 튀어나와 있습니다.
安浦杉萌生:(약간 인상을 찌푸리고선, 튀어나온 책을 꺼내 펼쳐본다.)
제목은 <빠르고 쉽게 이해하는 재미있는 상대성 이론!>… 이네요.
과학 코너에나 있을 법한 책이 뜬금없이 음악 코너에?
安浦杉萌生:
자료조사
기준치:70/35/14
굴림:43
판정결과:보통 성공
그 다음 페이지로 넘기면 여러가지 타임 패러독스에 관련된 내용들이 줄글 형식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개중 신경이 쓰이는 대목을 발견합니다.
安浦杉萌生:(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었으나… 과제에는 도움이 될 듯해 일단 챙기고선 나머지 잘못 꽂혀있던 책들을 직원에게 갖다준다.)
九条天:야스라기 씨, 책은 골랐어? (어느새 계산까지 끝마치고 왔는지 봉투 하나를 들고 있다.)
安浦杉萌生:네, 일단은요.(잠시 눈만 깜박이다)…빠르시네요.(무얼 샀는지 물어보고 싶은 눈치였으나… 이내 그만두고 슬 고개를 돌린다.)저도 계산하고 올게요.
九条天:그래? 그럼, 다녀와. 나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먼저 서점 밖으로 나선다.)
安浦杉萌生:(빠르게 계산을 마치고 따라나간다.)
겨울이 농익어가며 세상에 해가 떠있는 시간이 부쩍 짧아졌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니 교연한 어둠이 상공과 구름을 남색으로 물들이고 있습니다.
九条天:꼭 들러야 할 장소가 있는데... ... 괜찮으면 같이 갈래?
安浦杉萌生:좋아요. ……앞장서실 거죠?
九条天:당연하지. 가자, 야스라기 씨. (앞장 선다.)
쿠죠는 어느 외진 골목길에 접어듭니다.
주변을 살피면 양옆으로 붉은 벽돌이 고루 쌓여 있고 그 표면을 잎 떨어진 담쟁이 넝쿨이 똬리 틀고 있습니다.
여름이었다면 필시 장미가 만발해 있었겠죠.
메바에로 말할 것 같으면 요 근처에 이런 길이 있었는지… 금시초문입니다.
번화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장소 하나가 고스란히 남겨진 듯한 풍경은 꽤 낯설지도 모릅니다.
점점 더 좁아지는 골목을 나아가다 보면 머지 않아 그 끝에 당도합니다.
두 사람의 발걸음은 귀퉁이에 세워진 다 낡은 악기상 앞에 머무릅니다.
쿰쿰한 나무썩은내, 비릿한 풀냄새와 어쩐지 짙은 오존 냄새가 머리맡을 맴돕니다.
페인트칠이 벗겨진 흰 울타리가 빙 둘러쳐진 악기상, 기스 투성이 전면유리창 너머로 갖가지 악기들이 모습을 뽐내고 있습니다.
메바에가 무어라고 입을 열 새도 없이 쿠죠는 악기상의 출입구 문을 열고 들어섭니다.
딸랑. 계절의 구색을 맞추듯 청명한 현관벨소리가 귓전을 때립니다.
빛이 바랜 [카운터] 좌석에 앉아 있던 악기상의 주인은 두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흘끗 확인하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합니다.
교복 차림새의 학생 두 명이 무언가를 살 것 처럼 보이지는 않았나봐요.
목재 구조의 악기상 내부는 흐릿하나마 찝찔한 먼지 냄새가 납니다.
살피기에는 벽면 가득 들어찬 거대한 [책장]이 인상적이고, 악기상의 메인이라 할 수 있는 갖가지 [악기들]은 진열대 위에 놓여 있거나, 벽에 걸려있거나 합니다.
악기만큼은 애지중지 관리했는지 하나같이 먼지가 쌓이지 않은데다 광택이 돕니다.
쿠죠는 무언가를 찾고 있는 눈치입니다.
악기들 사이를 서성이고 있습니다.
安浦杉萌生:……이런 장소가 있는 줄은 몰랐는데요.(눈을 동그랗게 뜨고선 주변을 휘 둘러본다.)
九条天:나도 우연히 찾은 곳이야. 심심하면 한 번 둘러보지 그래? 악기상도 오랜만에 오는 거 아니야?
安浦杉萌生:뭐… 그런 셈이죠.(서성이는 것을 흘긋 보다, 책장으로 시선을 돌린다.)
셀 수 없이 많은 악보집들이 책장 가득 어깨과 어깨를 맞댄 채 꽂혀 있습니다.
어느 한 권 빠짐 없이 세월의 흔적이 누렇게 껴있습니다.
걷어내지 못한 먼지가 얕게 쌓여 있기도 하고, 모서리가 찢어진 악보집이 보이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종이는 관리하기 힘드니까요.
安浦杉萌生:(아까 그 악보도 여기서 샀으려나. 실없는 생각이나 하며 악기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현악기, 금관악기, 목관악기, 타악기… 타현악기인 피아노까지.
이 허름한 악기상에 어울리지 않을만큼 아름답고 반짝이는 악기들이 그 종류를 가리지 않고 자리합니다.
창측 한켠에는 들여온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진열된 다른 악기들보다도 아름답고 깨끗한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습니다.
安浦杉萌生:(의도적으로 시선을 돌리고, 카운터 쪽으로 향한다.)
팔꿈치를 올린채 턱을 괴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악기상 주인의 모습이 보입니다.
카운터 위에는 낡아빠진 [아날로그 시계]와 [라디오]가 올라와 있고, 그 옆에 읽다만 [신문]이 놓여 있네요.
安浦杉萌生:(라디오를 살펴본다.)
척 보기에도 만들어진지 기십 년은 되어 보이는 오래된 라디오.
노이즈 낀 저음질의 클래식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安浦杉萌生:(신문을 슬쩍 훑어본다.)
잘 알려진 신문사의 주간 신문입니다만, …자세히 살펴보면 최신호가 아니라 몇 주 전에 발행된 신문입니다.
安浦杉萌生:
지능
기준치:70/35/14
굴림:26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기사 날짜를 재차 살피니 이 신문은 3주 전에 인쇄된 호입니다.
'지난주'가 덧붙어 있는 것을 미루어 유추하건대 그 매혹적이라는 B씨의 연주는 대략 한 달 전에 콘서트로 진행되었던 모양이에요.
어쩐지 묘한 기분이 듭니다.
혹은 위화감이거나 어떤 감이 작용하며 드는 느낌일 지도 모르고요.
한 달 전이라면… 지금 유행 중인 정체불명의 전염병이 최초로 전파되었던 시기와 맞아 떨어집니다.
게다가 콘서트가 있었던 예술의 전당 위치가 A시라고요?
A시라면 분명….
安浦杉萌生:(전염병이 처음 시작된…. 그러나 우연이겠지 싶어 그냥 흘려넘긴다.)
九条天:야스라기 씨, 돌아가자. (석연찮은 표정으로 메바에에게 다가간다.)
安浦杉萌生:갑자기요…?(흘긋 시계를 본다. 지금이 몇 시더라.)
골동품 가게에서 주워올 법한 연식의 오래된 아날로그 시계.
시계약은 꼬박꼬박 잘 갈아주고 있는 모양인지 세 개의 침은 별 무리없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시간은 8시가 조금 넘었습니다.
九条天:응, 찾고 있는 악기가 있는데, 지금은 없는 것 같아서. 팔리지는 않았을 테니까... 나중에 다시 와보려고.
安浦杉萌生:뭐… 시간도 꽤 늦었으니까요. 이만 돌아가죠.
악기상 문을 열고 나오니 온전한 칠흑의 밤이 되어 있습니다.
짙은 밤냄새가 아스팔트와 돌바닥을 기기 시작한 하루의 끝물, 그 사이의 고즈넉한 시간. 소등되어 있던 가로등의 불빛이 하나씩 점등하며 패턴식의 돌길을 비춥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전염병이 창궐하기 시작한 이후 도시는 저녁시간대 특유의 활기를 잃은지 오랩니다.
악기상에서 나온 두 사람은 귀갓길에 광장에 놓인 낡은 피아노 한 대를 발견하게 됩니다.
쿠죠는 마치 홀린 사람처럼 피아노를 향해 다가섭니다.
낡디 낡아 의자에 앉는 사람도, 건반에 손을 대는 사람도, 하다못해 눈길을 주는 사람도 없이 분수대 맞은 편에 그저 장식물처럼 배치되어 있는 나무 피아노입니다.
九条天:(손 끝으로 건반을 부드럽게 쓸어 내린다.) 여기에 있었구나...
 ✷ 정신력 판정 ✷ 
安浦杉萌生:
정신
기준치:60/30/12
굴림:12
판정결과:극단적 성공
세상의 오류와 같은 현상, 다시 한 번 어쩐지 모를 데자뷰 현상에 사로잡힙니다.
이 장면, 어디선가 분명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꿈에서일까요?
九条天:(건반을 쓸던 손을 떼어내고 피아노 의자에 앉는다. 아까 구매했던 악보 중 하나를 골라 녹음기와 함께 피아노 위에 올린다.)
쿠죠가 연주를 시작하면 잰걸음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사람들의 이목이 광장의 피아노와 쿠죠에게 집중됩니다.
휴대폰을 들어 쿠죠가 연주하는 것을 촬영하거나 동영상으로 남기는 행인들의 모습도 심심찮게 보입니다.
그런 쿠죠의 연주를 바라보는 메바에의 심정은 어떤가요?
메바에도 언젠가 박수 갈채를 받으며 무대에 올랐던 적이 있을 터입니다.
해가 온전히 졌는데도 목구멍은 뜨겁고 살갗은 벗겨질 것처럼 차갑습니다.
가로등의 적적한 불빛이 마치 스포트라이트처럼 광장을 밝힙니다.
그제야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허름하고 볼품 없던 낡아 빠진 피아노일지라도 그 정도의 연약한 빛을 반사할 수는 있는 모양입니다….
安浦杉萌生:(뒤로 물러서 행인들 틈에 파묻힌다. 군더더기 없는, 완벽에 가까운 연주. 그것이 저로서는 절대 근접할 수 없는 영역임을 통감하는 동시에 조금 분하다고 생각해 버려서…….)
(거기까지 생각이 가닿자, 메바에는 저도 모르는 새에 터질 듯 양 주먹을 그러쥐었다. 그러나 감각은 없다. 냉기에 장시간 노출된 살갗이 차다못해 뜨겁게 아렸던 탓에…. 그러고선 문득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저 역시도 그렇게 무뎌진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리고 무감했을 적엔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이 서서히 녹아가는 그 감각은 정말 끔찍이도 불쾌하다고.)
쿠죠의 피아노는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쿠죠만의 무대. 과거에 당신이 올라가 있었던 무대.
그곳에 다시 올라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나요?
安浦杉萌生:
??? Roll
기준치:100/50/20
굴림:70
판정결과:보통 성공
무대 위의 공기, 그곳에서 올려다 보는 관객들의 표정.
그때 느꼈던 기분을 다시 맛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시 한 번 피아노 위에 손가락을 올려두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곧 쿠죠의 연주가 끝이 납니다.
커다란 박수 갈채가 이어집니다.
九条天:(녹음기의 종료 버튼을 누르고 악보를 챙겨, 메바에에게 다가간다.) 야스라기 씨, 아직도 피아노를 치고 싶지 않아?
安浦杉萌生:당신 진짜 최악이에요. ……알아요?(이어 무언가 말하려는 듯 수 차례 입을 달싹이다… 결국 고집스레 입을 다물어버린다.)
九条天:... ...응, 알고 있어. (작게 숨을 내뱉고는 하늘을 바라본다.) 표정을 보니 알겠네. 야스라기 씨는 지금, 무대에 오르고 싶은 거지? 망설이지 마. 앞으로 나아가. 그게 연주자인 야스라기 메바에가 할 일이야.
安浦杉萌生:쿠죠 씨가 뭘 안다고 그래요.(뒷걸음질친다.)만난 지 하루밖에 안 됐으면서 전부 알고 있다는 것처럼 굴고.(재차 뒷걸음질친다.)거슬려요, 거슬린다구요….(토해내듯 내뱉는 말들…)……여긴 제게 벼랑이에요. 나아가봤자 떨어지기만 할 거예요.(말끝이 미세하게 떨렸던가.)
九条天:...피아노, 좋아하잖아? 처음 무대 위에 올랐을 때의 감각, 관객들의 표정. 그 무엇 하나도 잊을 수 없잖아. 관객들도 마찬가지야. 최고의 순간을 선물해주었던 야스라기 메바에를, 관객들은 절대 잊지 않아.
安浦杉萌生:(좋아할 리 없잖아요? 싫어해요. 바보 같은 취미라고 생각한다고요. 관객들도 전부 잊어버렸을 거예요. 그리 쏘아붙이려 했으나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않는데요.(시선을 내리깐 채 부러 발음을 뭉그러뜨려 웅얼댄다. 왜 이런 말들까지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그리 생각하면서도….)
九条天:...그것 봐, 역시 싫지 않잖아? 그렇다면... ... 잊지 말아줘. 나도 야스라기 씨를 잊지 않았으니까.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전부야.
安浦杉萌生:………생각은 해볼게요.(언니의 무언가가 아닌 오롯한 저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제법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어딘가 찝찝한 기분이 가시질 않아서, 결국 톡 쏘아붙이고 홱 고개를 돌려버린다.)됐죠? 이제 돌아갈래요.
九条天:...응, 그래. 시간도 많이 늦었으니까. 배웅은 필요해?
安浦杉萌生:됐어요, 환자를 부려먹는 취미는 없네요.
九条天:그 정도는 아니라고 했는데. 그래도 고마워, 야스라기 씨. 조심히 들어 가. 내일 학교에서 보자.
安浦杉萌生:쿠죠 씨도요. 내일은 멀쩡한 모습으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못마땅한 낯.)푹 쉬시라는 이야기예요, 아까처럼 괜히 무리하지 말고.
九条天:알고 있어. 오늘 밤은 푹 쉴 거니까 크게 걱정은 안 해도 돼. 잘 가. (발 걸음을 돌린다.)
安浦杉萌生:(가볍게 손을 흔들고 발걸음을 돌린다.)
.
.
.
그로부터 며칠 뒤, 아침
숨통을 불사르는 듯한 건조함과 함께 잠에서 깨어나면 휴대폰에 맞춰두었던 알람이 PC를 보채고 있습니다.
삐비비빅. 삐비비빅. 삐비비빅.
정신사나운 벨소리는 한참이고 이어집니다.
오전 댓바람부터 머리가 띵한 것이… 밤새 공기중에 섞여든 냉기에 시달렸는지도 모릅니다.
빨리 준비를 마치고 등교를 해야겠네요.
安浦杉萌生:(일어나 앉아 잠시간 머리를 짚었다, 빠르게 갈 준비를 시작한다.)
등교 준비를 끝마치고 집 바깥으로 나서려던 메바에는 끄지 않은 채로 잊고 있었던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 소리를 듣게 됩니다.
퍽 익숙한 아나운서의 목소리네요.
정체불명의 전염성 질병에 대한 속보를 다루기 위해 신설 편성되었다던 그 코너임이 분명합니다.
 ✷ 듣기 판정 ✷ 
安浦杉萌生:
듣기
기준치:60/30/12
굴림:16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아나운서: …발표된 통계에 따르면, 정체불명의 전염성 열병에 감염된 환자의 수가 전세계 인구의 25%를 넘어섰다고 합니다. 시민들의 불안감은 날로 달로 급증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최근 전세계 곳곳에서 공통적인 기현상이 발생, 목격되고 있습니다. 증언은 일체 열을 빼앗기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비롯되었는데요, 환자들은 하나같이 여름철에나 날 법한 짙은 오존 냄새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면서도 '밤 하늘에 별들이 수도 없이 많이 떠있는 것이 기이하다.'는 말을 되풀이 하고 있다고 합니다. 모 대학병원 의료진은 질병 감염에 따른 환각 증세의 가능성을… 다음 속보입니다….
安浦杉萌生:(애써 신경쓰지 않으려 수 차례 고갤 흔들다, 잘 되지 않았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신경질적으로 TV 전원을 꺼버린다.)
TV 전원을 끈 뒤, 메바에는 학교로 향합니다.
교실에 도착하니, 쿠죠의 자리가 비어있습니다.
항상 메바에 보다 일찍 등교를 했었는데... 이상하네요.
安浦杉萌生:(상태가 좋지 못했던 게 기억나 자꾸만 신경이 쓰였으나… 애써 외면하고 자리에 착석한다.)
자리에 착석하면, 곧 선생님이 들어옵니다.
선생님: (출석을 전부 부르곤) 아, 그리고. 쿠죠는 최근에 유행하는 전염성 열병으로 인해 병결 했다.
그러고보니 두 반이 묶인 뒤로부터 서넛의 아이들이 병결 처리 되었습니다.
메꿔두었던 책상은 다시금 주인을 잃고 방치되길 반복합니다.
선생님께 쿠죠의 병결 이유를 듣게된 메바에는 자꾸만 신경이 쓰이고 가슴이 조일듯 답답해집니다.
安浦杉萌生:(초조한 듯 손끝으로 연신 책상을 두드린다.)
초조한 기분으로 수업이 시작하길 기다립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지난 며칠간 당신과 쿠죠는 오랜 시간을 공유했습니다.
그래서일지도 몰라요.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설명할 거예요?
.
.
.
하교를 알리는 묵직한 종례음과 함께, 번쩍! 마치 스위치를 올리듯 분산되어 있던 정신이 한 자리에서 맞붙었습니다.
뒤늦게 주변을 둘러보면 책가방을 싼 아이들이 교실 뒷문으로 빠져나가는 모습이 들어옵니다.
어느틈에 종례가 이루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하루종일 좀처럼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학교가 파했으니 집으로 귀가해야겠죠.
安浦杉萌生:(빠르게 가방을 챙기고 갈 채비를 한다. 그러면서도 텐의 책상 부근에서 시선을 떼질 못했다. 신경이 쓰였던 건지, 아니면…)
메바에는 쿠죠의 책상 쪽으로 시선을 기울입니다.
때마침 덜 닫힌 창문 가장자리에 불어온 오후의 설익은 바람에 가슴이 뻐근해졌습니다.
아무것도 올라오지 않은 건조한 1인용의 책걸상. 비어 있는 가방 걸이, 사물함 아래 가지런히 모여있는 교과서...
가장자리에 [C반, 쿠죠 텐]이라고 적혀있는 코팅된 시간표까지.
기스 하나 남아 있지 않은 책상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전에 없던 기이한 감각마저 솟아나는 것입니다.
어제는 분명 이 자리에 책상 주인이 앉아 있었는데, 오늘은 하루종일 비어 있었습니다.
그 덧없는 사실이 어쩐지 비현실적으로만 느껴지던 그 때.
 ✷ 관찰 판정 ✷ 
安浦杉萌生:
관찰력
기준치:75/37/15
굴림:61
판정결과:보통 성공
널빤지처럼 납작하고 어두운 책상 사물함 속, 켜켜이 정돈된 교과서 사이로부터 빼꼼 튀어나와 있는 찢어진 작은 종잇조각을 발견합니다.
安浦杉萌生:(살펴본다.)
잘 닦인 도자기처럼 맨질거리는 종이를 손에 쥔 메바에는 전에 없던 확신을 느낄 지도 모릅니다.
어떤가요?
이 종이는 마치 단서처럼, 단조롭고 평화롭기 짝이 없는 교실의 풍경 속 우뚝 솟아난 돌부리처럼 당신의 눈에 걸리고 말았을 겁니다.
마치 결국에는 이 쪽지를 발견할 줄 알았다는 것처럼 그 자리에 놓여 있었으니까.
그래서 당신은 기꺼이 걸려 넘어져버리고 말았으니까.
안 그런가요?
쪽지를 펼쳐서 살펴보면...
이미지
어떤 위치를 가리키는 약도입니다.
눈에 익은 글씨체만으로도 머리통에 자연스레 그려지는 장소가 있었습니다.
이 장소는 의심할 여지 없이 며칠 전 쿠죠와 함께 방문했던 그 악기상이 틀림 없습니다.
 ✷ 관찰 판정 ✷ 
安浦杉萌生:
관찰력
기준치:75/37/15
굴림:84
판정결과:실패
:헉 다시!!
安浦杉萌生:
관찰력
기준치:75/37/15
굴림:19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메모 귀퉁이에 무언가 적혀있습니다.
安浦杉萌生:(눈을 가늘게 뜨고 메모를 매만진다. 저번에 보아하니 무언가 찾는 게 있던 모양인데… 본인이 가지 못하게 되었으니 저라도 한번 들러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사진을 찍고 메모는 제자리에 둔다.)
메모를 제자리에 두고, 메바에는 학교를 나섭니다.
끊임없이 기억을 더듬거나 헤매다보면 메바에는 일전에 함께 방문했던 악기상 앞에 도달합니다.
악기상 출입구에는 희끄무레하게 바래어 페인트칠이 벗겨진 '임시 휴업' 팻말이 걸려 있습니다.
安浦杉萌生:(심기불편…)(진짜 안 하나? 수 차례 서성여본다.)
미련을 떨치지 못한 당신의 눈에 들어온 것은 악기상 바깥쪽의 자그맣게 무너진 울타리입니다.
그 사이로 어떤 계절의 풀벌레 우는 소리만 작달만합니다
좁다란 공간은 마치 언젠가의 비밀스러운 길이 닦였다가 무산된 것 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틈새를 들여다 볼 수도 있습니다.
安浦杉萌生:(들여다본다.)
몸을 구겨본다면 어떻게든 이동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安浦杉萌生:(울타리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걸음을 내딛는다.)
비밀의 장소로 인도하는양 샛길을 타고 악기상 건물 외벽의 바깥 쪽을 타고 둘러 이동하다 보면, 메바에는 나무가 부자연스럽게 우거진 공터를 발견합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풀벌레 우는 소리는 꺼진지 오래.
이곳에 사람의 흔적은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다만… 메마른 흙바닥의 정가운데 뻥 뚫린 싱크홀이 나있는 것만큼은 예삿 일이 아닌 것 같군요.
구멍의 가장자리는 마치 녹은 것처럼 보이며, 비정상적으로 일렁이고 있습니다.
이론적으로 존재하는 웜홀이라는 미지의 공간이 발치 아래 투영된 듯 합니다.
 ✷ 이성 판정 ✷ 
安浦杉萌生:
SAN Roll
기준치:60/30/12
굴림:96
판정결과:실패
:이성 - 1)" style="padding: 2px 5px; border: 1px solid rgb(190, 32, 46); font-weight: bolder; cursor: help; background: rgba(190, 32, 46, 0.2);">1
영하를 웃도는 불친절한 겨울,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메바에는 유사 이전의 세상에 인간이 최초로 빚어졌을 당시 하나의 재료처럼 장기 곳곳에 새겨져 있었던 본능으로 말미암아 어떤 메시지를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 구멍에 뛰어들어야 해!
당신은 마치 정해진 운명처럼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어쩌면 결국 이곳에 다다르기 위해 스스로 모르는 사이 오래도록 방황했을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뛰어 든다면... 뛰어 들기 전에 현재의 시간에 존재하는 물건 하나를 꼭 쥐고 뛰어 들어야합니다!
安浦杉萌生:(뛰어들어야 해! 째지는 목소리가 귓가를 날카롭게 스친다. 그 소리를 기꺼이 받아들이고서는, 야스라기 메바에는 눈을 꾹 감았다. 앞은 낭떠러지다. 그럼에도 용기를 내 한 발짝 내딛고 싶어진 된 것은 아마….)
(기억을 되새길 물건, 주머니 속의 명찰을 매만진다. 준비는 끝났다. 이어 그는 망설임 없이 구멍에 뛰어들어……)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구멍 속으로 몸을 내던집니다.
찰나에 당신은 온 몸을 거스를듯 피부를 긁어대는 어떤 비인간적인 손길을 느낍니다
전에 느껴본 적 없던 외계의 에너지가 강압적으로 몸을 잡아 당기는 듯한 감각이었습니다.
.
.
.
…깜빡. 깜빡, 깜빡.
소용돌이치는 왜곡 속을 맨발로 건너온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맞게 도착한 걸까요?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면 당신은 꽤 깊은 구덩이 안에 있습니다.
깊은 구멍 안에 머물고 있는 탓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 꼭 천장같은 회색의 하늘이 원형으로 오려져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 오르기&근력 판정 ✷ 
安浦杉萌生:
오르기
기준치:20/10/4
굴림:61
판정결과:실패
근력
기준치:70/35/14
굴림:76
판정결과:실패
:성공할 때까지 굴려봅시다
安浦杉萌生:
오르기
기준치:20/10/4
굴림:58
판정결과:실패
근력
기준치:70/35/14
굴림:5
판정결과:극단적 성공
:오르기 판정 대신 행운 판정 굴려봅시다!
安浦杉萌生:
기준치:40/20/8
굴림:11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굿
여러 번의 시도 끝에 겨우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근처를 살피면 구덩이에 뛰어들기 전에 보았던 그 공터입니다.
장소는 그대로인데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사뭇 다릅니다.
이리저리 우거져있던 나무가 바싹 말라 타고 남은 잿더미처럼 바닥을 장악하고 있고, 맞은 편에 보이는 악기상의 벽면은 부식되어 이질적인 감상을 더합니다.
오랜 세월동안 전혀 관리되지 않은 것 처럼 보이는군요.
安浦杉萌生:(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하고서는, 뚱한 표정으로 몸에 묻은 흙을 턴다. 얼추 정리가 되고 난 뒤에야 그제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아까와는 풍경이 다르지만 같은 장소라면, 이곳을 빠져나가 악기상으로 향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安浦杉萌生:(악기상으로 향한다.)
공터에서 빠져나오면 악기상 입구에 다다릅니다.
길게 뻗은 아스팔트 도로나 굴곡진 모퉁이를 돌아보아도 지나다니는 사람 하나 발견할 수 없습니다.
공간 자체가 마치 노이즈낀 흑백 필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전깃줄 위에 앉아 지저귀는 새들의 목소리나 칼바람이 맞부딪히는 요란하고 적막한 소음만이 공허한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악기상을 살피면 녹슨 초인종이 달린 문은 걸쇠가 고장나 살짝 열려 있습니다.
직전에 보았던 '임시 휴업'팻말은 문간에 그대로 걸려 있습니다.
'임시', '휴업', 하고 반으로 쪼개져 덜렁거리는 탓에 다소 음산한 기운을 더하고 있습니다.
닦지 않아 희뿌연 통유리 너머로 진열된 악기는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다 낡아가는 [피아노]한 대만이 전시되어 있을 따름입니다.
安浦杉萌生:(미묘하게 달라진 풍경에 위화감을 느끼면서도, 조심스레 다가간다.)
 ✷ 지능 판정 ✷ 
安浦杉萌生:
지능
기준치:70/35/14
굴림:75
판정결과:실패
:앗 다시 굴려봅시다
安浦杉萌生:
지능
기준치:70/35/14
굴림:17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어쩐지 눈에 익은 피아노에 마음을 사로잡혔습니다.
자세히 살피지 않아도 '아' 싶은 구석이 있는 모양새인 겁니다.
이 피아노는… 며칠 전 쿠죠와 함께 광장을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보았던 예의 그 피아노입니다.
다 낡아 볼품 없어진 악기에 싸구려 페인트 칠을 해 디스플레이용 구색만을 갖추고 있었던 그 피아노.
安浦杉萌生:……실례합니다.(열린 문에 두어 차례 노크하고서는, 악기상 안으로 들어간다.)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는 [카운터]입니다.
좌석에 앉아 악기상을 지키고 있던 가게 주인은 온데간데 없습니다.
목재 구조의 악기상 내부는 텁텁하고 간지러운 먼지 냄새가 납니다.
어디에서도 악기는 찾아볼 수 없지만 벽면 가득 들어찬 거대한 [책장]은 그대로네요.
安浦杉萌生:(벽면을 찬찬히 손으로 쓸며 책장 쪽으로 다가간다.)
도둑 맞았는지 듬성듬성 비어있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셀 수 없이 많은 악보집들이 책장 가득 꽂혀 있습니다.
걷어내지 못한 먼지는 더욱 무거워졌고, 제대로 자리잡지 못해 절반쯤 튀어나와 있는 책자도 여럿 보입니다.
책장 모서리에 전에 보지 못했던 [달력]하나가 박힌 못 위로 장식물처럼 걸려 있음을 발견합니다.
安浦杉萌生:(짙은 먼지에 반대 손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 달력을 살펴본다.)
달력은 12월에 펼쳐져 있습니다.
덩그러니 매달려 있는 몸통만한 달력을 쳐다보던 당신은 달력 어귀에 적혀있던 올해의 년도를 발견합니다.
그곳에는 큼지막한 네 개의 숫자로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2023년.
安浦杉萌生:……2023년?(달력이 잘못되었나 싶어, 확인을 위해 겉옷 주머니 속의 휴대폰을 집어든다.)
핸드폰에 있는 달력을 살펴 보면... 2020년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安浦杉萌生:그럴 리가 없다니까요….(바싹 마른 나무, 부식된 벽면…. 짐작가는 바는 있으나 속단하기는 아직 일렀다. 일단 좀 더 주변을 둘러본다.)
주변을 둘러보면... 카운터에 시선이 갑니다.
쓸쓸한 카운터 위에는 다소 눈에 익은 물건들이 주인을 잃고 방치되어 있습니다.
[아날로그 시계]와 [라디오]에 먼지가 그득 쌓여 있습니다.
安浦杉萌生:(아날로그 시계와 제 휴대폰의 시계를 비교해본다.)
먼지 쌓인 아날로그 시계를 들여다봅니다.
약이 거의 다 되어가는 모양인지 세 개의 침이 얼마 남지 않은 수명을 그러모아 간신히 뜀박질 하고 있습니다.
하나 부자연스러운 점은 바늘들이 하나같이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본래 공전해야 할 궤도를 떠나지 못한 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 이성 판정 ✷ 
安浦杉萌生:
SAN Roll
기준치:59/29/11
굴림:60
판정결과:실패
:이성 -1
安浦杉萌生:(믿기지 않는 광경에 연신 눈을 비빈다. 그러면서도 더 얻을 수 있는 건 없나 싶어, 라디오를 작동시켜본다.)
치직… 치지지직…
완전히 고장나버렸는지 탁한 백색소음을 흩뿌리고 있습니다.
安浦杉萌生:
기계수리
기준치:20/10/4
굴림:28
판정결과:실패
:헉 아깝다...
행운 판정 함 해봅시다
安浦杉萌生:
기준치:40/20/8
굴림:91
판정결과:실패
:다시?!
安浦杉萌生:
기준치:40/20/8
굴림:70
판정결과:실패
:마지막으로...
安浦杉萌生:
기준치:40/20/8
굴림:61
판정결과:실패
安浦杉萌生:
기계수리
기준치:20/10/4
굴림:88
판정결과:실패
툭, 툭... 두드려 봐도 반응이 없습니다.
어쩔 수 없나... 싶어 포기하려던 그때,
"…칙, 치지직… 괴 전염병으로 인한 체온을 빼앗기다 사망한 인구가 전체 인류의 70%에 육박했습니다. 사회는 완전히 마비되었습니다… 치직, …그 누구도 미래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대로 인류는 역사에서 잊혀지게 될 것입니다. 한편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오컬트 학자들이 내놓은 새로운 가설이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전염병이 어떤 경로로 감염되어 인체에 해를 끼치는지, 보편적이지 않은 경로로 추적을 이어오던 그들은 전 지구를 장악한 미지의 전염병이 사실은 어떤 저주이며, 감염 경로가 특이하게도 '음악'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어떤 저주받은 곡으로 인하여 전염병이 창궐하였다면, 이 광기어린 저주를 세상에 퍼뜨린 원인이 되는 곡의 악보를 태우는 방법만이 존속과 멸망을 결정지을 유일한 수단이라고… 치직…"
 ✷ 지능 판정 ✷ 
安浦杉萌生:
지능
기준치:70/35/14
굴림:61
판정결과:보통 성공
세상의 오류를 알리듯 거꾸로 돌아가는 아날로그 시계와, 당신이 살던 현재로부터 조금 동떨어진 세월의 흐름을 가리키는 달력.
길거리에는 사람 하나 오가지 않고 시야는 마치 흑백필름을 끼워 넣은 것처럼 생기 없었습니다.
미지의 구멍, 그곳에 마치 운명같은 이끌림을 얻어 겁없이 뛰어든 당신.
눈치챕니다.
당신은 가까운 미래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2023년, 인구의 70%가 잠들어버린 뒤 고요한 멸망을 기다리고 있는 3년 후의 미래입니다.
 ✷ 이성 판정 ✷ 
安浦杉萌生:
SAN Roll
기준치:58/29/11
굴림:42
판정결과:보통 성공
:이성 -1
安浦杉萌生:(믿기 힘든 상황에 표정이 굳어버린다. 그럼, 쿠죠 씨는 결국…. 참담한 기분. 그러나 저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여 그는 느릿이 악기상을 나섰다. 내딛는 발걸음이 유난히도 무거웠다.)
악기상을 열고 나오면, 끝없는 냉기에 젖은 아스팔트의 건너편 골목에서 누군가의 인영이 다가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 실루엣을 바라보고 있자면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목소리가 메바에를 반깁니다.
九条天:야스라기 씨, 한참 찾았잖아. 전화도 안 받고... 몸은 괜찮아 진 거야?
安浦杉萌生:……읏, 쿠죠 씨!(다급한 손길로 네 어깨를 붙잡고 상태를 살핀다.)그건 제가 하고 싶은 말이에요. 몸은 괜찮으신 건가요? 상태는 좀 어때요? 그때 걸렸다던 건….
九条天:뭐? 갑자기 무슨 소리야? (의아한 표정으로 메바에를 바라본다.) 야스라기 씨, 오늘 조금 이상하네. 역시 감기가 심한 거지? 상태 더 안 좋아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 가. 오늘 춥잖아? (어깨를 잡은 손을 부드럽게 떼어내곤) ...과거로 가서 야스라기 씨를 만나고 오려고 해. 생각해봤는데, 역시 괜찮을 것 같아. 야스라기 씨가 정말 피아노 치는 걸 싫어했더라면 이 악기상에 찾아 오지도 않았을 테니까.
쿠죠의 품에는 악보가 들려 있습니다.
이른 아침의 교실, 책상 위에 올라와있던 쿠죠의 가방 사이에서 보았던 그 악보집이 틀림 없습니다.
그 말을 남긴 쿠죠는 마치 모든 결정과 준비를 끝마친 사람처럼, 미련 없이 메바에를 지나쳐 악보를 들고 깊고 커다란 구멍에 뛰어듭니다.
安浦杉萌生:쿠죠 씨, 저는…!(그러나 결국 말을 끝맺지 못했다. 야스라기 메바에는 항상 그랬으므로.)
쿠죠가 커다란 구멍에 뛰어들고... 이 장소에는 당신 혼자만 남았습니다.
당신은 이제 어떻게 할까요?
다시 구멍으로 뛰어들면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 겁니다.
安浦杉萌生:(다시 구멍으로 뛰어든다.)
.
.
.
다시 정신을 차리면 2023년에 묶여있던 몸은 다시금 2020년의 악기상 앞에 서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쿠죠는 보이지 않고, 한가로운 골목길을 누비는 어린 아이들이 종종 눈에 들어옵니다.
아이들의 얼굴을 칭칭 둘러싼 목도리 끄트머리가 잔상처럼 눈가에 남습니다.
문득 주머니를 뒤져 살펴보면,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명함이 완전히 너덜너덜 해져 있습니다.
악기상 유리창 너머의 아날로그 시계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정갈하게 돌아갑니다.
꿈이라도 꾼 걸까요?
단지 꿈이라는 한 단어로 축약하기에 보고 듣고 겪었던 모든 것들이 지나치게 현실적이었습니다.
安浦杉萌生:(수 차례 눈을 깜박인다. 좀처럼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탓이다. 그럼 여태까지 마주하고 있었던 쿠죠 텐은, 처음 본 사이였음에도 모든 걸 알고 있는 것처럼 굴었던 것은…. 정보가 뒤얽혀 머리가 복잡해지려는 것을 애써 무시하고서는 그는 음악실로 향했다. ……마치 정해진 운명처럼.)
어느덧 저녁이 쏟아지고 밤으로 물들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학교로 향하는 내내 무거운 공기가 발목을 잡는듯 합니다.
한밤중의 겨울은 이래서 무서운 법이죠.
매년 이맘때쯤 하얀 눈이 쏟아지고는 했으니, 시간이 부지런히 흐른다면 며칠 안 있어 폭설이 시작될 터입니다.
메바에는 목적지로 향하던 도중 몇가지 기현상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전봇대를 붙잡은채 119에 두통을 호소하다 잠들듯 바닥에 쓰러진 환자의 주위를 지나가던 사람이 일으켜 세우는 한편,
급히 출동하던 앰뷸런스가 어느 사거리에서 승용차와 부딪히는 등의 사고가 잇따라 발생합니다.
불가해하기 짝이 없는 세상의 불균형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왜 전에는 눈치채지 못했을까요?
하늘을 올려다보면 소름끼칠만큼 많은 별의 형상이 아른거립니다.
학교에 도착해 음악실로 향하면 정해져 있는 수순처럼 열려 있는 문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닫히지 않은 창문 틈새로 불어오는 바람의 유영에 빼곡히 덮인 커튼이 의지를 가진 생물처럼 하늘댑니다.
음악실 안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安浦杉萌生:(불현듯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고는, 급한 손길로 피아노 의자를 열어본다.)
그랜드 피아노 앞에 놓여있는 피아노 의자 뚜껑을 열면 수납서랍 한구석에 보관되어 있는 오래된 낡은 악보집 하나가 눈에 띕니다.
<어떤 계절이 흘린 눈물>입니다.
그와 동시에 낡아빠진 악보집 어귀에 자리하고 있는 어떤 징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 정신력 판정 ✷ 
安浦杉萌生:
정신
기준치:60/30/12
굴림:69
판정결과:실패
그래요, 그 때, 쿠죠가 쏟았던 악보집들 사이에 미운오리새끼처럼 섞여있던 그 악보집에도 이런 그림이 박혀 있었습니다.
조악하게 본떠 넣은 듯 형편 없는 문양은 은은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일견 누군가의 자필 사인처럼 보이는 문양은 꼭 도는 것 같기도 하고…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 기이한 홀로그램같은 형상에 어쩐지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 이성 판정 ✷ 
安浦杉萌生:
SAN Roll
기준치:57/28/11
굴림:15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安浦杉萌生:……분명 그 악보를 태우라고 했었죠, 그런데 어떻게….(조급한 마음에 손톱을 짓씹는다. 라이터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학교에 무언갈 태울 만한 장소가 있었나.)
:지능 판정 해볼까요?
安浦杉萌生:
지능
기준치:70/35/14
굴림:45
판정결과:보통 성공
그러고 보니... 학교에 소각장이 있었죠.
安浦杉萌生:(다른 방안을 더 생각해낼 여유는 없었다. 급히 악보를 챙겨 소각장으로 향한다.)
악보를 태우기 위해 음악실을 벗어나려던 메바에는 눈 앞이 하얗게 아른대는 듯한 잔상을 보았습니다.
과연 잔상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요?
우물에서 올라오는 듯한 인광의 기둥은 평범한 사람의 의식이 상상할 수 있는 어떠한 영상도 초월하는 재앙과 비정상의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단지 빛은 이제 새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쏟아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감히 이름 붙일 수 없는 색깔의 형체 없는 흐름은 구덩이에서 곧장 천장을 향해 솟구쳐 올라가는 듯합니다.
순수한 색채의 형태로 나타난 이계의 지성체, 세상에 알려진 어떤 스펙트럼과도 닮지 않은 희미한 색을 내는 비실체.
우주에서 온 색채입니다!
 ✷ 이성 판정 ✷ 
安浦杉萌生:
SAN Roll
기준치:57/28/11
굴림:18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감소 없음.
아른거리던 색채는 곧 작은 개미지옥을 만들어낼듯 당신의 육신을 에워쌉니다.
순간, 머리가 반으로 쪼개질 듯한 역겨운 오존 냄새를 맡았습니다.
부자연스럽게도 겨울 내내 맡아왔던 비리고도 싱그러운 냄새입니다.
우주에서 온 색채는 가까이에 있는 지성체의 마음을 약화시킵니다.
색채의 정신공격이 이어집니다.
:색채의 정신력 값 50에 대해 지능으로 대항 판정을 합니다.
安浦杉萌生:
지능
기준치:70/35/14
굴림:67
판정결과:보통 성공
:
정신
기준치:50/25/10
굴림:51
판정결과:실패
끈적하고 불쾌한 비실체가 몸 곳곳에 들러붙는 감각을 뿌리치고 가까스로 정신을 다잡고 음악실 밖으로 대피합니다.
그때, 누군가가 당신의 팔을 붙잡고 끌어당깁니다.
九条天:...야스라기 메바에! (차오르는 숨을 가다듬고 메바에를 매섭게 노려본다.) 밤에는 음악실에 오지 말라고 했잖아. 그새 까먹은 거야?
安浦杉萌生:(붙들어오는 손길에 흠칫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던 것도 잠시, 이내 눈을 치켜뜨고 매섭게 노려보는 것을 뻔뻔스레 마주보았다.)그건 제가 할 말이예요. 여기서 뭐 하시는 건가요? 아프시다면서요, 그럼 좀 집에서 쉬시라는 말이에요. 왜 자꾸 그렇게 필사적으로 구시는 거냐고요…, 바보같이.(얼핏 슬픈 빛이 어렸으나, 금세 표정을 갈무리했다.)말싸움할 시간 없어요, 비키세요.(떨쳐내려는 듯 팔을 한 차례 거칠게 흔들었다.)
九条天:잠깐,... (무언가 더 말하려던 입은 이내 닫혔다. 팔을 잡았던 손을 놓고, 악보에 시선을 둔다. 표정이 조금 누그러진다.) ...하아. 소각장에 가려는 거지? 같이 가자.
安浦杉萌生:하아, 정말. ……가요, 제가 앞장설게요.(악보집과 너를 번갈아 바라보다 결국 한숨을 쉬어버린다.)몸은 좀 어때요?
九条天:솔직히 말하자면... 그다지 좋은 상태는 아니야. 쉬라고 해도 무리야.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으니까.
安浦杉萌生:(괜찮지 않다는 말에 순간적으로 도끼눈을 떴다, 바로 표정을 굳히고 머쓱한 표정으로 헛기침한다.)그럼 질문 하나만 할게요. 대체 그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게 뭔데요? 그게 뭐길래 전부터 그렇게 미련하게 굴어요.(뜸)……악보집 태우는 거 말고요.
九条天:... ...뜬금 없을지도 모르지만, 선생님이 내주셨던 과학 숙제 이야기야. 선생님은 미래에서 건너온 사람이 과거의 역사를 바꿀 수 있을지에 대해 물었잖아. 야스라기 씨는 어떻게 생각해?
安浦杉萌生:새삼스런 말씀을 하시네요.(네 쪽을 흘긋 뒤돌아보고선 던지듯 내뱉는다.)지금 바꾸고 계시잖아요?
九条天:(그 말에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렇구나, 역시... 작게 중얼거리고는 말을 잇는다.) 내가 직접적으로 바꾸고 있는 건 아니잖아? 나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만이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 없어.
그러니까, 야스라기 씨...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
安浦杉萌生:(조용히 네 말을 경청하다, 농담조로.)부탁이 꽤 많으시네요.(잠시 발걸음을 멈춘다.)뭐, 일단 들어보고 결정할게요.
쿠죠는 메바에에게 악보집 하나를 건네줍니다.
낡고, 오래 되었고, 허름하며, 손때 묻었지만… 세상에 둘도 없는 보물을 건네받는 듯한 착각이 들었습니다.
쿠죠는 곧 쓰러질 것 같은 창백한 안색을 하고서 끊길 것 같은 목소리를 쥐어 짜냅니다.
그 모습이 마치 한계에 다다른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九条天:내일 오후 6시에 피아노가 놓여 있는 그 광장에서 그 악보를 연주해 줘. 꼭 그 광장이어야 해. 사람이 많은 곳에서, 가장 유동 인구가 많을 시간에, 반드시 이 곡을 연주해야 해. 야스라기 씨라면 할 수 있다고, 나는 믿어. (올곧은 눈으로 메바에를 마주한다.)
사람은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 죽어가는 존재라지만 세상에 절망과 꺾인 의지만이 잔재 한다면 너와 내가 이렇게 무사히 만날 수 있었을 리 없어. 눈 앞에 놓인 골목의 폭이 서로 다를 뿐 나아갈 수 있는 길은 누구에게나 주어져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사람들은 언젠가 좌절하지 않는 때가 오기를 기다리며 선택을 반복하고 버텨내는 거야.
安浦杉萌生:………대답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어봐도 되나요?
九条天:...응. 뭔데?
安浦杉萌生:저를 기억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던 거, 진심인가요?(제가 다시 피아노를 치게 하려고 적당히 지어낸 말이 아니라? 확신 없는 어조, 웅얼대며 흩어지는 말들…)
九条天:진심이야. 거짓이었던 건 단 하나도 없어. 만약 야스라기 씨가 그 순간을 부정한다면 나는 진심으로 네게 실망할 거야.
安浦杉萌生:(제법 얼빠진 낯이 되었다. 한참을 그렇게 빤히 바라보다, 돌연히 홱 고개를 돌려버린다.)……저도 참 바보네요.(혼잣말인지, 그게 아니라면 네게 건네는 말인지…)가요, 늦기 전에.
九条天:... ...그래. 빨리 태우고 돌아가자. 어서 안내 해.
安浦杉萌生:……말 안 하셔도 할 거거든요.(따라오라는 듯 휙 지나쳐가버린다. 걸음이 미묘하게 빠르다.
두 사람은 소각장에 도착합니다.
경비가 있을지도 모르니 빨리 태우고 돌아가는 편이 좋겠네요.
安浦杉萌生:(주변을 살피고, 경비가 없는 것을 확인한 뒤 빠르게 악보를 소각장에 집어넣는다.)죄송합니다, 한 번만 쓸게요…!
악보를 소각장에 넣어서 태웁니다.
九条天:(점점 재가 되어 사라지는 악보를 가만히 바라본다.) ...돌아가자, 야스라기 씨. 배웅은... 필요 없지?
安浦杉萌生:말씀드렸잖아요? 환자를 부려먹는 취미는 없다고.(뜸)쿠죠 씨야말로 정말 괜찮으신 건가요? 원하신다면 업어다드릴 수도 있는데요.
九条天:....됐어. 곧 괜찮아질 거니까. 먼저 갈게. 조심히 들어가, 야스라기 씨.
그 말을 남긴 쿠죠는 등을 돌려 사라집니다.
사라지는 쿠죠를 잡아 세울 수 없습니다.
말로 설명할 수 없겠지만 비유하자면 그런 것입니다.
무지개를 손으로 잡을 수 없고 햇빛의 뜨거움을 유리병 속에 담지는 못하는 것과 같은.
安浦杉萌生:아, 저기…….(막연히 손을 뻗는다. 그러나 결국 붙잡지 못하고 허공을 가른 손만 천천히 추락한다.)
메바에는 쿠죠가 사라지는 걸 가만히 바라보다, 집으로 돌아갑니다.
.
.
.
눈이라도 퍼부을듯 칙칙한 먹구름이 욕심껏 천공을 차지하고 있는 시간입니다.
그 풍경이 어쩐지 기묘하게 반짝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安浦杉萌生:(광장으로 향한다.)
광장으로 나온 메바에는 주변을 살핍니다.
평소보다 적은 수이긴 합니다만, 그럼에도 이 광장은 요 근방에서 유동객이 많은 장소로 손꼽히는 장소입니다.
중앙에 마련된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 놓여 있는 낡아빠진 피아노가 눈에 들어옵니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페인트 칠을 해두었지만 좀처럼 눈길을 사로잡지는 못하는 낡고 오래된 악기가 꼭 고물처럼 보입니다.
점점 더 무채색해지며, 점점 더 다채로워지는 모순적인 세계에 도태되어 있습니다.
그 허름한 피아노에 다가서는 것은 오로지 메바에, 당신 뿐이겠죠.
安浦杉萌生:(다가가 조심스레 뚜껑을 열자, 희미한 소음와 함께 켜켜이 쌓인 먼지가 공기중으로 흩어진다. 손 전체를 감싸는 서늘한 감각이 오늘따라 기꺼웠다. 시선을 옮기니 익숙한 구조의 건반과 악보 받침대가 눈길을 끈다. 메바에는 말없이 피아노를 쓸었다. 마치 오랜 친구라도 반기려는 것처럼.)
당신은 시간의 풍파를 고스란히 간직한 악보대 위에 셀 수 없이 많은 나이를 먹고 자란 곡을 올려둡니다.
음표를 빼곡히 채워 넣은 악보는 종이가 어찌나 얇고 덧없는지 바람 한 점에도 부서질 것처럼 가녀립니다.
이 악보의 어느 구석이 그렇게나 특별한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쿠죠는 당신에게 간곡히 부탁했었죠.
언젠가 당신이 최초로 건반에 손을 올려놓았을 때처럼 어깨 끝을 살짝 떨면서.
따듯하고 상냥한 공기 한 품 찾아볼 수 없는 불친절한 겨울의 정가운데서 마침내 건반에 손을 올려둡니다.
결코 잊지 못해 품고 살 수밖에 없었던 날카로운 냉기가 백건과 흑건 위에도 자리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럼에도 모순적이게도 어깨를 두드리던 강렬한 추위가 한풀 꺾입니다.
추억으로 남길 뻔했던 감각들이 되살아남을 느낀 것은 그 때였습니다.
하지만 이대로도 괜찮나요?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한 번 연주를 그만 두었던 당신이 과연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모든 의지를 잃고 주저앉아 있었을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도망치듯 반대로 뛰어 가능한 먼 곳으로 숨었던 당신의 굳어버린 손가락은, 다시 누군가의 발걸음을 멈춰 세울만한 연주를 이어나갈 수 있을까요?
최종 성장된 피아노 기능치를 공개합니다.
이어나갈 수 있을까요?
그럼요.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세상에 절망과 꺾인 의지만이 잔재한다면 한 번 좌절했던 당신이 이렇게 무사히 피아노 앞에 앉게 될 수 있었을 리 만무합니다.
눈 앞에 놓인 골목의 폭이 서로 다를 뿐 나아갈 수 있는 길은 누구에게나, 언제나, 주어져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언젠가 좌절하지 않는 때가 오기를 기다리며 선택을 번복하고 버텨내는 겁니다!
마치 약속처럼, 겨울은 곧 지나갈 거예요.
 ✷ 피아노 판정 ✷ 
安浦杉萌生:
피아노 Roll
기준치:80/40/16
굴림:58
판정결과:보통 성공
연주가 시작되면 바쁘게 거리를 활보하고, 때로는 흐릿한 풍경에서 벗어날듯 지나치던 사람들의 시선이 점차 광장에 모이기 시작합니다.
기이하게 물들었던 별빛 하늘이 풍향을 따라 꽃가루처럼 걷히고 가슴 위에 얹힌 듯 반죽되어 있던 아픔과 좌절이 단 하나의 점이 되어 흔적을 달리합니다.
곡이 끝맺음과 동시에 건반에서 손가락이 떨어지면,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박수갈채를 날립니다.
뉘엿뉘엿 져가던 하늘에 수놓였던 수억 개의 별들이, 세계를 숙주삼아 성장하던 색채의 무리가 모두 걷혔음을 깨닫습니다.
오랜만에 연주를 끝마친 기분은 어떠한가요? 오랜만에 듣는 사람들의 박수 갈채 소리는요? 당신의 기분을 알려주세요.
安浦杉萌生:(거칠게 숨을 몰아쉰다. 거진 몇 년만에 느껴보는, 몸 전체를 가득 채우는 충족감에 며 저도 모르게 눈물을 한 방울 흘려보낸다.)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안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다 쿠죠 씨 때문이에요.(그러면서도 희미하게 미소짓는다. 오래 앓던 이라도 뽑아낸 것 같은, 그런… 후련한 미소였다.)
후련한 미소를 지으며, 주변을 둘러봅니다.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한 장본인을 만나고 싶은데...
그 어느 구석에서도 쿠죠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을 같은 자리에 앉아 기다렸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
.
.
쿠죠의 전학 소식을 듣게 된 것은 돌아온 월요일의 아침에서였습니다.
메바에는 어쩌면 묘연히 사라져버린 쿠죠를 수소문 했을 수도 있고, 쿠죠를 만나기 전의 평범했던 하루처럼 모든 사건을 잊은 채 나날을 이어나가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의 체온을 빼앗던 전염병 사태가 완전히 종식되고, 혼란했던 세계는 평화를 되찾습니다.
저체온에 시달려 병결했던 아이들도 모두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귀에 박혀 익숙했던 캐럴이 늦겨울의 끝에서 기나긴 생의 종지부를 찍습니다.
시간은 부지런히 흐르고 계절이 순환합니다.
10대의 끝, 졸업식을 하루 앞둔 당신은 책상 사물함 깊숙한 곳에서 반과 반으로 접힌 쪽지 하나를 발견합니다.
눈에 익은 글씨를 확인하면 틀림 없이 쿠죠의 글씨체입니다.
접힌 자국만이 선명하고 흐릿하게 번진 연필 자국은….
[ 2023년 크리스마스, 겨울의 악기상에서 다시 만나자. ]
반짝, 하고. 마치 빛을 받은 유령의 신호처럼.
END1. Da capo!, 처음으로 돌아가.
현재를 살아가던 메바에의 개입과 선택으로 인해 모든 미래가 바뀌었습니다. 쿠죠와의 두번째 첫만남이 2023년에 이루어집니다. 손실되었던 모든 이성치와 체력을 회복합니다.이어서, 에필로그로 이어집니다.
누군가에는 그리울 여느 2023년의 겨울.
세간에 알려진 '정체불명의 전염병'사태가 종식된 날로부터 약 3년이 흘렀습니다/
좁디 좁은 골목을 돌아 울타리 어귀에 멈춰선 당신은 영업 종료 팻말이 걸려 있는 악기상 건물을 바라봅니다.
관리 되지 않아 썩어가는 나무벽은 꼭 악기상이 아닌 잊혀진 어딘가의 골동품 가게를 연상케 합니다.
그나마 빼곡한 덩쿨식물이 건물 외벽을 타고 자라난 풍경만이 음산함을 닦아낼 뿐입니다.
메바에는 걸쇠가 앞길을 가로막은 악기상 처마 아래서 낡아빠진 [피아노] 한 대를 발견합니다.
3년 전의 그 피아노임은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습니다.
▷칠이 더욱 벗겨진 피아노를 살필 수 있습니다.
安浦杉萌生:(천천히 다가선다.)
악보대 위에는 반듯하게 펼쳐진 [악보] 하나와 더불어 사용감이 남아 있는 [녹음기] 하나를 발견합니다.
녹음기는 피아노만큼이나 눈에 익는 종류입니다.
3년 전의 쿠죠가 늘 가지고 다니던 그 녹음기니까요.
安浦杉萌生:(녹음기를 집어들어 재생 버튼을 눌러본다.)
녹음기 전원 버튼을 누르면 화면이 들어옵니다.
재생 버튼을 누르면, 노이즈낀 음질 틈을 파고든 쿠죠의 목소리가 잿빛 겨울의 골목길에 흩뿌려집니다.
九条天:메리크리스마스, 야스라기 씨. 피아노 연주 잘 들었어.
나는 지금 내가 살던 미래로 돌아가. 과거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까 봐 마지막 인사를 하지 않고 떠날 마음을 먹었어.
야스라기 씨, 우리는 미래에서 만났던 거지?
과거로 향하는 구멍에 뛰어들기 직전 악기상 앞에서 마주쳤었잖아. 그때는 눈치채지 못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야스라기 씨'였던 거야. 내가 찾아 헤매길 자처했던 3년 전의...
신기하다고 생각 안해? 내가 헤매기도 전에 야스라기 씨가 나를 먼저 만나러 와줬잖아.
나는 줄곧 '네가'가 이곳에 이끌려 찾아 오기를 기다렸던 것 같아.
九条天:...이걸로 완전한 이별은 아니야. 나는 계속 너를 기다릴 테니까.
그러니, 또 만나자.
음성 메시지가 종료되면 한송이 두송이 눈발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언제부터 내리기 시작한 걸까요?
멍하니 녹음기를 든 채, 망가져가는 피아노 앞에 우두커니 서있던 당신의 어깨를 톡톡, 누군가 두드리겠죠.
불현듯 고개를 돌려 상대를 확인하면, …쿠죠입니다.
2023년, 두 번째 첫 만남.
알고 있나요?
두 사람은 괴멸해가던 일전의 미래에서도 2023년에 이 피아노 앞에서 마주쳤습니다.
어떤 악보와 함께.
메리 크리스마스, 메바에, 텐.
FIN

 

'BACKUP > 로그' 카테고리의 다른 글

[COC] 하이웨이 패스파인더  (0) 2023.07.31
[COC] 여름을 말려 심장에 꽂는 법  (0) 2022.09.08